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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Aug 30. 2023

소설가를 믿지 마세요 1

가사법정 앞으로 걸어갔다. 전자게시판 앞의 의자엔 서너 명의 사람들이 앉아있다. 모자 관계로 보이는 두 사람과 한 여자, 그리고 한 남자, 그리고 또 한 남자와 여자가 한 자리씩 두 자리씩 건너 뚝뚝 떨어져 앉아있다. 전자게시판에는 오전 9시의 휴정과 10시부터 열 건 가량의 선고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의 아내가 보이지 않는 것에 안심했다. ‘법정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사무장이 알려줄 거니까요. 그리고 피고가 가는 일은 없어요. 이런 상간녀 손해배상소송은 말입니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굳이 가야 한다면 절대 감정에 휘말려선 안 됩니다. 저쪽이 시비를 건다고 해도 무조건 참아야 합니다. 만약 대거리라도 한다면, 글쎄, 뭐 그럴 필요가 있겠어요? 이제 마지막 판결만 남았는데.’ 변호사는 말끝에 남녀 간의 치정은 대개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결국 폭언이나 폭력이 오가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변호사의 말은 거의 맞았다. 나는 소송장을 받고 이렇게 세 번째 선고까지 여름과 겨울, 두 계절 동안 막장을 경험하였다. 이 이상의 천박하고 더러운 감정의 바닥이 있을까, 마치 동물의 왕국 속에 있는 듯한 처절함을 맛보았다. 하지만 이것도 단련되는지 가속도가 붙는지 어디까지 가는지 어디 한번 보고말자 하는 오기도 일어났다.

   처음 집으로 우송되어 온 상간녀 손해배상소송장을 받고 한참 동안 멍한 채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백 퍼센트 승소를 장담하는 한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하였을 때 변호사는 반론할 증거가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원고가 보낸 내용은 사실이 아니에요. 거짓입니다. 그들 부부는 이미 파탄지경이었고 무엇보다 원고의 남편은 나에게 아내와 사별했다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진실은 드러날 겁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변호사가 시니컬하게 웃었다. ‘대체 무슨 진실을 말하는 겁니까? 법에 진실 같은 게 있는 줄 알아요? 없어요. 오로지 증거만 있어요. 허위로 꾸미든 만들든 증거만 완벽하면 끝입니다.’

   변호사의 말대로라면 나는 완전히 패소다. 증거는 없다. 내가 사랑하고 열광하고 감응하고 중독된 그 사적인 공간과 행위가 어떻게 문서화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유부남인 줄 몰랐다,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니 그의 새빨간 거짓말을 증명한다면, 그렇게 하기 위해 그를 증인으로 내세우면 승산이 있을까. 그렇다고 그것이 진실이 될까.

   집으로 소송장이 왔다고 하자 그는 끙하는 신음소리를 내었다.

   “이런 일을 벌일 줄은 몰랐어. 우린 단지 귀찮아서, 이혼 법정에 나란히 서서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끔찍하게 생각해서 합의이혼의 절차마저 하지 않은 사람들이거든. 내가 너에게 거짓말한 것임을 증명하면 돼. 그건 내가 증인으로 출석하면 되는 거고.”

   하지만 그는 통화가 끝날 때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그 말을 할 때까지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겨울 햇살이 마루 창문을 통해 인색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마당의 꽃나무가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듣고 있어? 내가 해결할게. 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나는 그의 말이 낯설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도 그는 이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잠적하였다. 여러 군데 수소문 끝에 그가 군 입대를 하였다는 것을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산부인과 병원에서 낙태 수술을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독감이나 성장통,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이고 다시는 반복해선 안 되는 치명적인 실수일 뿐, 내 삶의 장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것만 기억하고 태아를 포함한 나머지를 모두 지웠다. 그가 제대를 한 이후 수없이 집으로 찾아와 친밀한 연인 흉내를 하였을 때도 그가 신뢰할 수 없는 인간형이라는 나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었다.

   출간한 나의 첫 소설책을 대량으로 구매하여 회사 사람에게 선물한다고, 일면불식의 미용사나 식당 주인이나 구두 수선공에게까지 나눠 준다는 말을 어머니를 통해 들었을 때도 헛웃음을 지었을 뿐이다.  

   “내가 그렇게 들여보내지 말라고 해도 문을 열어주니까 그렇지. 내가 얼마나 그 새끼에게 모멸감을 당한 지 알아? 이 새낀 얼마나 뻔뻔한지 회사 앞에 가서 뺨을 갈겨도 꿈쩍을 안 해. 이게 사람 돌게 만든다니까. 나를 미쳐서 죽게 만들 작정이라니까. 그러니까 다신 들여보내지 마. 내가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하라고.”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너와는 끝났을진 모르지만 나완 아니다. 네 오빠는 공부한다고 멀리 가 있고 너는 소설 쓴다고 돌아다니지, 내가 무슨 낙이 있니? 아들 대신 얼마나 의지가 되는지 알아?”  

   평생 누군가를 의지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의지박약의 어머니는 바람피운 아버지의 상대 여자와도 말벗이 될 수 있을 정도였다. 결국 그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발걸음을 끊었다. 어머니는 탄식과 아쉬움과 노여움이 뒤섞인 채 나에게 화풀이를 하였다. ‘소설 쓴다고 그놈의 가짜 세상에서 떠도는 너보다는 백 번 좋았는데, 이제 결혼하고 나니 낯짝 한 번 보기 어렵네. 전화도 받질 않아. 독하네.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손국수도 말아주고 잡채도 해주고 그 비싼 갈비도 말하는 족족 다 만들어 줬는데. 그러니까 결혼식 날 내가 갔어야 했는데, 네가 죽자고 말려서 못 갔지. 내가 패악을 부려서 그놈의 결혼식을 망쳐야 했는데. ’

   그런 어머닌 자신의 장례식에 그를 끌어들인 꼴이 되었다. 조문 왔던 그는 문인협회 월간지 뒤의 회원 동정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생 구독자라서 말이야. 매달 집으로 오거든.’ 그에게 오빠는 ‘이게 얼마만이야. 그래, 잊지 않고 와주었네. 그래야지. 어머니가 얼마나 자넬 좋아했는데, 엄청 사위 삼고 싶어 하셨지. 그러니 자네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상심했겠어?… 뭐, 그거야 지난 과거니까 지금 뭐라 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안 그래? 잘 살고 있고? 근데 두 사람 그동안 서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 같군 그래. 자네를 보는 쟤 얼굴이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해서 말이야. 참, 그렇겠군. 결혼한 뒤에도 만나면 그거야 불륜 아닌가? 하하.’ 오빠는 마치 흥미 있는 구경거리를 만난 듯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게 큰소리로 떠들었다.

   나는 뭔가 모르는 불안감이 어머니에 대한 애도와 슬픔을 완전히 뒤덮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납골당까지 따라왔다. ‘이제 쟤는 혼자가 되었어. 치매인 어머니를 근 십 년 동안 모셨지. 이젠 소설에 매진하는 수밖에 없지. 첫 책을 내고 한참이나 지났으니 이젠 실컷 쓸 수 있겠지. 소설과 결혼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어. 쟤 성격으론 말이야. 자네가 좀 챙겨줘. 나는 멀리 있어서 쟤를 챙겨주기도 그렇고. 뭐, 요즘에는 남자사람친구 뭐, 이런 말도 유행하던데 말이지. 우리 딸도 그렇거든. 아, 그래. 어장관리라든가, 좋은 시대야. 안 그래? 하하.’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오빠의 옆에서 올케언니가 빨리 차에 타지 않고 뭐 하냐고 고함을 지르면서 나와 그를 번갈아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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