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부부
새벽, 여자가 일어난다. 여자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에 손을 대고는 인상을 찌푸린다. 잠든 남자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던 여자는 갑자기 욕실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한다. 한참 동안 게워내는 소리와 물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젖은 머리를 한 채 여자가 나온다. 여자는 내 앞에 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얕은 한숨을 내쉬며 내 얼굴을 연신 한 손으로 닦아낸다. 그리고는 또다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옷을 입는다.
“벌써 일어난 거야?”
남자가 일어나 여자에게 묻는다.
“아, 미안해. 깨우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구역질을 하는데 어떻게 안 깰 수가 있어? 어제 마신 술 때문인가?”
여자가 말한다.
“술 때문이 아냐.”
“그럼?”
“나 임신한 것 같아.”
남자는 말이 없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일까?”
남자가 겨우 이렇게 말을 한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한심한 듯 바라보았다.
“지난달에 만났을 때 당신이 술에 취한 채 덤벼들었잖아. 그걸 잊었어?”
“모르겠어 … 근데 우리 더 이상 아기를 갖는 건 안 된다는 거 알지?”
“알아. 알고말고. 내가 알아서 할게.”
“미안해. 이번에도 내가 따라가 줄 수 없을 것 같아. 이번 공사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어.”
“걱정하지 마. 다음 달엔 어쩌면 못 만날 지도 몰라. 나도 몸조리를 해야 하니까.”
남자는 침대 위에서 일어나 바지 주머니를 뒤진다. 남자는 지폐를 꺼내 여자에게 건네주고는 담배를 손에 쥐고 창문 앞으로 간다.
“이게 뭐야?”
“수술비가 들 게 아냐? 그걸로 써.”
“마치 알고 준비한 사람 같네.”
“생활비는 통장으로 부칠게. 이 돈은 당신 수술하고 보약이나 지어먹어. 몸이 영 말이 아냐.”
여자가 복잡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본다.
"왜? 모자라?”
여자가 고개를 젓는다.
“당신이 이렇게 돈을 주니까 기분이 이상해서 그래. 내가 마치 창녀가 된 기분이야.”
남자가 미간을 찌푸린다. 남자는 담배를 깊이 빤다. 담배 연기가 창문으로 날아간다.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래? 내가 창녀 취급하면 좋겠어?”
“응, 차라리 그 편이 나을 것 같아. 그럼 최소한 당신이 불쌍하게 여겨지지는 않을 것 같아. 당신과 헤어져 여관을 나서면 꼭 이런 기분이 들었어. 창녀가 몸을 팔고 나가는 것 같은.”
“쓸데없는 소리. 나가자. 공장까지 데려다줄게.”
“아냐. 더 자. 나는 버스 타고 가면 돼. 시청까지만 가면 통근버스가 오니까.”
“고집부리지 마. 오늘은 내가 데려다줄게.”
“아냐. 만약 당신이 날 데려다주면 비참한 기분이 들 것 같아서 그래. 당신이 미워질 것도 같아.”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담배를 더욱 깊이 빨아들인다. 여자는 나를 보며 화장을 시작한다. 기미가 끼어있는 검은 얼굴에 분을 칠하고 그리고 입술에 붉은색의 립스틱을 바른다. 남자가 그런 여자를 못마땅한 듯 바라본다.
“창녀처럼 이 여관을 나서고 싶어서 그래. 그 누구에게서라도 욕을 좀 듣고 싶어 져. 아주 심한 욕설을 듣고 싶어. 안 그러면 미칠 것 같아.”
남자는 쉰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빚만 갚으면 함께 살자. 아이들이랑 함께. 빚이 있으니까 집에서 자꾸 아이들을 때리게 돼. 나도 모르게.”
“맞아 당신 그랬지. 별 거 아닌 걸로 아이들을 때렸어. 그래도 아이들은 아는 것 같아. 당신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울어.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속이 깊은지 당신 알지? ”
결국 여자는 눈물을 흘리고 만다.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러니까 화를 냈으면 좋잖아. 아예 날 보고 화를 내고 욕을 하란 말이야. 그렇게 해. 그게 낫겠어. 지금 당신의 그 모습이 얼마나 내 마음을 더럽게 만드는 줄 알아? ”
여자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기 시작한다. 방안은 여자의 울음소리와 남자의 담배연기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