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
이제 밤이 된 것일까. 창을 막고 있는 붉고 두꺼운 커튼은 밖이 밤인지 낮인지 당최 구분할 수가 없다. 적어도 예전엔 한 쌍 두 쌍 연인들이 늘어가는 것으로 밤낮을 판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전부턴 그런 가늠조차 불가능했다. 이젠 밤이고 낮이고 다르지 않았고 갈수록 낮 손님이 밤손님보다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밤뿐만 아니라 낮도 외로운 것 같았다. 낮에 몸을 섞는 사람들의 표정에선 밤에 볼 수 없는 초조함과 불안이 배어 있고 그런 남녀일수록 사랑의 행위 또한 격렬했다. 마치 스포츠 게임을 하듯 그들은 육체의 유희를 즐겼다. 외로움이 창궐하면 할수록 백설장의 한낮은 애욕으로 번창한다. 밤에만 성교를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율은 이제 완전히 없어졌다.
이번엔 여자가 먼저 방에 들어와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 지난번에 만났던 그 방이야. 차는 멀리 두고 와. 나도 호숫가에 차를 대고 여기까지 걸어왔어. 지금 샤워하고 있을 테니 눈썹이 휘날리도록 빨리 와. 점심시간에 잠깐 나온 거야. 늦게 오면 알아서 해.”
여자는 샤워를 하고 침대 위에 누워 영화를 본다. 적당히 근육이 붙은 여자는 자신의 몸을 내 쪽으로 연신 비추면서 자신의 몸매에 도취된 듯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우아한 목선과 봉긋이 솟은 가슴, 가는 허리선과 아름다운 근육의 다리는 육체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때 남자가 허겁지겁 들어온다. 남자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다.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여자의 목덜미에 애무를 퍼붓는다. 여자는 남자의 옷을 거칠게 벗긴다. 군살 하나 없는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겹쳐진다. 남자는 여자의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한 채 젖가슴을 애무하고 그러는 사이 여자의 한껏 벌어진 입술 사이로 교성이 쉴 새 없이 새어 나온다.
남자와 여자는 이제 오르가슴의 절정에서 추락한 듯 다소 허전한 표정으로 서로를 안고 있다. 방 안은 애액과 땀, 그리고 비릿한 정액냄새로 가득하다. 남자는 아쉬운 듯 여자에게 말한다.
“정말 이렇게 한 번으로 끝내야 하는 거야?
여자가 피식 웃는다.
“그럼 어쩌자고? 이제 곧 회의 시작이야.”
“그럼 우리 이렇게 하자. 지금 서로의 몸을 찍어두는 거야. 그럼 그걸 보느라 지루한 회의 시간이 금방 갈 거야.”
여자의 두 눈이 빛난다. 남자는 휴대전화로 여자의 나신을 찍는다. 여자도 남자를 찍는다. 찰칵 소리가 나자 남자의 성기는 부풀어 오른다.
“자, 이것 봐. 아직 나는 죽지 않았어.”
“회의시간에 사람들에게 들킬라 조심해서 봐. 들키면 큰일 나는 거 알지?”
“뭐, 본대도 얼굴도 없고 딱 그 부분만 있는데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알겠어?”
“히히. 그렇긴 하네. 너 다른 사람 보여주고 그러면 절대 안 돼!”
“너나 그러지 마셔.”
여자는 욕실로 들어가고 남자는 담배를 피워 문다. 이들은 감각적인 쾌락을 잘 이어나가고 있다. 그들은 성불능자로 만드는 결혼제도를 혐오했다. 결혼제도 안에서는 육체적인 사랑이 얼마 지나지 않아 권태의 강으로 흘러갔던 것일까, 그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개입하여 서로의 관계를 방해하는 일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섹스는 스포츠이자 삶의 동력이었다.
욕실에선 계속 물소리가 흐르고 있다. 여자는 오랫동안 씻고 있다. 남자는 전화를 걸고 있다. 물소리가 혹여 상대방에게 들킬까 봐 남자는 텔레비전 소리를 높인다. 화면에는 뉴스가 흐르고 있다. 남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오늘 일이 꼬여 버려서 집에 돌아가기는 틀렸어. 부장님이랑 왔지. 이제 막 접대 끝나고 부장님이랑 호텔에 들어왔다니깐. 애들은 어때? 자고 있어? 아니 바꾸지 마. 피곤해서 그래. 그렇다니까.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 수밖에 없다니까. 걱정하지 말고 문단속이나 잘하고 자라고.”
남자는 속이 타는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벌컥 들이마신다. 그리고는 욕실 쪽으로 힐끗 바라본다.
남자는 목욕을 하고 있는 여자의 나신을 훔쳐보길 좋아했다. 물소리와 함께 여자의 수초 같은 몸이 투명한 유리창에 어른거리는 것을 보며 담배를 피우곤 하였다.
물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있다. 신여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수돗물을 펑펑 쓰는 것인데 여관에서 물을 아끼는 알뜰한 손님을 만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