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지완 Dec 04. 2020

당신은 괜찮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스럽지만 미숙한 면이 많아 배움이 필요하다. 귀여운 반려견도 사람을 공격하려 들면 제재해야 한다. 즉, 괜찮은 모습이 되려면 가르치고 교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당신은 충분히 괜찮다'라는 말은 종종 위로가 된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니 이런 감성글을 남발하는 건 개인에게도 이들을 모아놓은 사회에도 그저 이롭지는 않다. 우리는 이런 말보다 나의 삶과 이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스스로 이해받고 위로받아야 한다.



괜찮지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인생의 기로에서 매번 도망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도 결국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때 삶의 무게를 짊어진 경험이 없는 어린아이라면 주저앉아 울어버린다. 그리곤 타인의 다독임을 기대할 뿐 주변의 고통은 품을 생각조차 못한다. 그는 불안과 우울로 두 눈과 귀를 싸맨다. 왜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할까? 여태껏 대처 방법을 배울 기회를 모두 회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너진 이에게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 스스로를 사랑하라. 자신조차 아끼지 않는다면 누가 당신을 소중히 여기겠는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우선, 나태하고 욕구대로 사는 사람을 좋아해 줄 이는 없다. 마치 불결한 손으로 대충 만든 음식을 남들에게 대접하는 꼴이니 말이다. 그런 음식은 스스로도 먹기 꺼려진다. 즉, ‘게으르고 책임감 없는 자신일지라도 그 자체로 사랑하라’는 말은 억지로 거짓말을 시키는 것과 같다. 반복적인 거짓은 병적인 상황을 초래한다.  



니체는 어린아이에서 성인이 되려면 노예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무언가 고통스러운 상황을 거쳐야만 진정한 성인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말 노예처럼 남들이 시키는 일만 강제로 해서는 성인이 될 수 있을까? 결국 최상의 시나리오는 자발적 노예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정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그 무게를 짊어지고,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며, 세상을 향해 바로 서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어디서부터 고쳐나가면 좋을까?



본인에게 진실할 수 있도록 명분을 주자. 칭찬할만한 구실을 만들어야 한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아예  하는 것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무언가를 하자. 그리고 충분히 유지가 될 때 조금씩 진도를 나가면 된다. 우선, 방이 엉망이라면 이불 개기만 해도 좋다. 몸이 망가지고 있다면 가볍게 러닝 하자. 본인에게 편한 속도로 15분 정도만 달려도 24시간의 질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를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음 날에 하면 되니 너무 걱정 말자. 다만, 이틀은 안된다. 우리 무의식이 스스로를 포기하는 자아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 자포자기하지 말자. 그건 좋은 꼴이 아니다. 지금 움직이지 않는다면 5년 뒤에는 지금보다 더 비참해진다.



부모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으로 체육관에 보내고, 적절히 사고할 수 있도록 공부시킨다. 당신도 스스로의 부모가 되어 자신에게 실질적인 이로움을 줘라. 그 후, 작은 변화에 살이 덧대어지고 선순환 고리가 돌기 시작한다면, 어느 순간 주변에서는 당신을 필요로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회에 이로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자신을 보살핀 행위로 인해 세상을 보살필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무언갈 배우고 경험한 위인이 그들의 통찰을 후세에 남기는 일은 반복해서 일어났다.



그러니 부딪혀보자. 아무리 큰 짐승이라도 잘게 쪼개면 한입씩 베어 물 수 있다.   

이전 09화 회피하는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