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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Sep 17. 2018

멈추면 비로소 실패하는 것

아내와 마리가 퇴원했을 때는 혹독한 폭음에 모두가 신음했던 여름이었다.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은 줄곧 집에만 머물렀다. 나는 해 넘어간 저녁 시간을 틈타 장을 보고 쓰레기를 버리러 간간이 외출을 했다. 아내는 회복을 하루라도 앞당기겠다는 의지로 종일 거실과 주방을 오고 가며 운동을 했다. 평소 좁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우리 집이 걷기 운동을 하기에는 턱없이 작다는 걸 알았다. 좀 걸을만하면 싱크대가 앞을 가로막고, 뒤돌아서 다시 몇 걸음 걸으면 커다란 창문 앞에 서게 되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런닝머신을 사나보다. 그래도 허리를 굽혀 구부정하게 걷던 아내는 하루가 다르게 회복하여,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유인원에서 오늘날의 꼿꼿한 직립보행을 완성한 인간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보는 듯 했다.


예상치 않았던 아내의 건강문제로 폐업 후에 나를 감싸고 있던 고민들은 저 멀리 흩어졌다. 건강이 중요하지 그까짓 밥벌이가 중요하냐, 라는 마음이었달까. 넌 아무 걱정 말고 건강이나 챙겨, 까짓 거 막노동이라도 해서 먹고 살지 뭐, 라고 말하니 아내가 박장대소 했다. 네가 막노동을 한다고? 네가? 라며 놀라워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글을 쓸 이유도, 힘도 없었다. 계속 앞날을 걱정하는 중이었고, 글쓰기는 그것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뭘 써왔다. 지금에야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나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엄격하게 기준을 세워놓고 거기에 닿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을 해소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결과는 없다. 지금까지 출간한 책들은 모두 반응이 좋지 않았다. 집필 노동에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경제적인 이익을 별로 보지 못했고, 작가로서의 앞날에 가는 빛 한 줄기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 작가로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글을 쓰는 의미를 찾기 위해 애쓰는 나는 홀로 어두운 터널에 갇힌 것 같았다.


그러나 아내가 수술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후론 이렇게 세 식구가 다시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생각이 단순해지니 행동도 단순해졌다. 글을 쓰고 싶은 욕구 외에 다른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작가로 살아갈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내가 작가로 살아가기로 결정했으면 그걸 가로막을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작가로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여러 실패들로 얼룩지긴 했지만, 살아오면서 이룬 작은 성공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 몇 번의 작은 성공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나를 여기로 가져다 놓았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고, 적금을 붓고, 연애를 하고, 자동차를 사고, 결혼을 하고, 아파트를 청약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내 인생의 작은 성공으로 기억하고 있다. 능력과 운의 적절한 조합이 빚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실패도 있다. 나는 직장에서 겨우 10년 넘는 시간을 버텼다. 나는 그것을 내 인생에서 겪은 큰 실패 중의 하나로 기억한다. 잘렸든, 내 발로 뛰쳐나왔든 어쨌든 버티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퇴사 다음 해, 로망으로 간직하고 있던 제주로의 이주를 실현한 것은 실패가 이끈 반전이자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이렇게 할 일 없이 먹고 놀고 있다. 이건 실패일까 성공일까.


작가로서도 나는 실패한 걸까. 성공의 반대편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오로지 실패 뿐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계속 작가이기를 원한다. 나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나의 걸음은 아직 실패라고 규정할 수 있는 지점까지 가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는 곳, 거기에 실패가 있다. 멈추면 비로소 실패하는 것이다. 걸음을 멈추지 않는 한 나는 아직 실패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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