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방의 공돌이 Sep 10. 2018

끝까지 알지 못 한 것

폐업을 한지 100일 쯤 되었을 때, 우리 부부에게 큰 일이 있었다. 아내가 아팠다. 입원 날짜가 다가올수록 우리 두 사람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건강에 대해서 지나치게 낙관적인 게 20대라면,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는 것이 40대가 아닐까. 이것도 세대차이라면 세대차이다. 이렇게 병원 신세 몇 번 지다가 50대가 되면 결국 뒤뜰이나 창고에 각종 효소를 담근 항아리가 하나둘 늘어나는 게 아닐까. 우리에게도 곧 그런 날이 오리라.


입원 전날, 심리적으로 힘든 우리를 더 힘들게 한 일이 또 생겼다.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을 때, 반려 고양이 마리까지 갑자기 아팠다. 아내 걱정으로 심장이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데 마리까지 아파서 말라비틀어진 심장이 똑 하고 떨어질 것만 같았다.


입원하러 가는 길에 마리를 동물병원에 맡겼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가슴이 아팠다. 이럴 땐 꼭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된다. 동물병원을 나설 때 이것이 이별의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감돌았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나도, 아내도 똑같은 상상을 했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어 버릴까봐 가슴에 꾹꾹 눌러 담았다. 아내도, 마리도 무사히 이 고비를 넘기고 다시 우리 셋이 한 집에서 사는 일상이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다행히 아내는 무사히 퇴원을 했고, 마리도 상태가 좋아져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입원 후 퇴원까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우리 세 식구 무사히 돌아와 다시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결말만이 남았다. 입원부터 퇴원까지의 일은 다시 떠올리기 싫다. 너무 괴롭다. 아내와 마리는 서로 영혼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왔는데 정말인 것 같다. 둘이 동시에 입원했다가 동시에 퇴원했다. 그 동안 내 심장은 몇 번이나 떨어지며 불지옥과 얼음지옥을 오갔다. 물론 나보다 더 아픈 건 두 당사자였지만.


다시 돌아온 일상이 너무도 감사했다. 불과 몇 주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다시 아플까봐 노심초사한 심정으로 마리를 관찰하며 마리와 아내를 동시에 간호했다. 뒤돌아서면 밥 때가 돌아오고, 뒤돌아서면 빨랫감이 쌓이고, 뒤돌아보면 청소를 해야 하는 혹독한 집안일로 하루하루가 바쁘게 돌아갔지만, 세 식구가 한 집에서 보내는 일상이 너무도 감사했다.


소중한 사람이 아플 때는 평소에 안 하던 생각을 한다. 이럴 때 사람은 인생 무상론에 빠지게 된다. 이런 저런 상상과 걱정 끝에 결국 지금까지처럼 아등바등 살지 말고 앞으로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자, 라는 빤한 결론에 도달한다. 몇 년 전에 갑작스런 고열로 응급실에 간 아내의 손을 잡고 그런 생각을 했고, 숙박업을 하는 6년 동안 몇 번 몸살로 앓아누워있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 뼈저리고 간절하게 똑같은 생각을 했다.


백수라는 흔하지만 특수한 상황에서 복잡한 생각들을 한 번에 정리하는 방법 중에 인생 무상론 만한 게 있을까. 아픈 몸과 지친 마음을 다스리며 짧은 인생 덧없음을 되새기다 보니 지금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할 뿐, 이 생에서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어지게 된다. 그렇게 백수로서의 앞날에 대한 근심과 걱정을 잠시나마 내려놓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100여일 전에 폐업을 했고, 각자 좋아하는 일, 오래오래 할 수 있는 일, 오래오래 좋아하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는 말에서 뭔가 뜨거운 에너지가 느껴진다. 하지만 40대라는 내 나이를 생각하면 그건 도리어 철없는 방황에 가깝다. 이 나이쯤 되었으면 건실한 일도 갖고 있고, 재산도 좀 더 일궜어야 하는데 말이다. 도대체 지금까지 뭐하고 살다가 이제 와서야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는 것인가. 어디선가 나를 향해 비아냥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일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는 데 바치는 것이 사람의 일생이라고 생각한다. 비교적 안전한 울타리에서 생활하는 직장인도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늘 고민한다. 은퇴를 앞둔 직장인도 결국 마지막에 남는 고민은 이제 뭘 해야 하나, 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는 건 청년에게만 주어지는 과제가 아니다. 중년이든 노년이든 방황은 계속 되고, 그것이 살아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일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직업과 경험들이 중요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나 역시 폐업한 나의 첫 자영업을 중요한 경험으로 여겼다. 나는 민박집을 운영하며 직장생활을 통해서는 결코 알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폐업을 결코 실패로 여기지 않는 이유는 나에게 성능 좋은 나침반이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 해보는 자영업이어서 어설펐던 적도 있었다. 처음엔 손님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 받고, 차 밖으로 휴지를 던지고 간 손님을 향해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손님이 불편하게 지내는 건 아닌지 밤새 노심초사 한 날들이 있었고, 또 때론 지나치게 무신경한 적도 있었다. 숙박업을 겨우 하룻밤 방을 내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일은 서비스업의 종합선물세트다. 간단하게 물건 하나 팔고 손님과 헤어지는 것이 아니다. 손님들은 하룻밤에서 길게는 5일 동안 우리 집에 머물면서 씻고, 먹고, 쉬고, 놀고, 잔다. 입실부터 퇴실까지 손님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고 편리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서비스가 필요한지 그 일을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누가 나에게 숙박업 창업과 운영에 대한 가이드북을 쓰라고 하면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 거기다 인간탐구의 영역까지 범주에 넣는다면 그건 세상에 없는 책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영업일이 늘어갈수록 안내사항의 분량은 왜 늘어나는가에 대한 고찰만으로도 학술적 가치가 충분한 인지심리학 연구의 현장 사례가 되지 않을까.


무한으로 확장하고 있는 우주처럼 안내사항은 왜 계속 늘어만 가는지 알게 된다면 그건 인간에 대한 이해의 완성이라고 여겨도 좋을 것이다. 모든 게 손님 때문은 아니다. 주인의 미숙함도 이유 중에 하나다. 구비물품, 집의 구조, 침구의 구성, 냉난방과 온수 시스템 등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편리한가에 따라 안내사항은 “편하게 주무시고 가세요.” 라는 단 한 문장으로도 충분하거나, 또는 단행본 한 권 분량이 된다. 어쨌든 이건 길고도 심도 깊은 내용으로, 여기서 간단히 다룰 주제가 아니다.


숙박업의 노하우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정작 마지막까지 알지 못한 것이 있다. 정말 알고 싶었지만 끝내 알지 못한 것. 불황을 이겨내는 법이다. 그것만은 끝까지 알 수가 없었다. 그걸 모르니 백수생활이 길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언젠가는 불황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불황에 대한 대비 없이 무언가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호황과 불황은 어떤 주기로 돌고 돈다. 금융과 부동산 시장, 국제정세와 남북관계 등에 따라서. 그리고 보통 사람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여러 요인들에 의해서.


사실 불황을 이겨내는 법 같은 건 없을 지도 모른다. 다만 불황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시장만 있을 뿐. 불황에도 불구하고 매년 연휴 때마다 인천공항 출국자 수는 늘어난다. 불황이라고 해서 소비를 절제하는 백화점 VIP 고객도 없다. 여유롭고 호화로운 시장만큼은 불황을 타지 않는 법이다.


어쨌든, 현재 나는 불황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 그것이 앞으로 뭐해서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끝낼 마지막 관문이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것이나 다름없는 나는 한심하기 그지없다. 인정한다. 근데 불황은 영업 실적이 0인 상태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마이너스로 치닫는 것이다. 백수 상태의 내가 아무것도 안 먹고 안 쓰고 살 수 없듯이 말이다. 자영업자에게 불황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도 어찌할 수 없는 게 바로 불황이다. 그래서 뭘 시작하기가 무서웠다.

이전 04화 호의도 평가 받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