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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Sep 03. 2018

폐업을 했다

10년 전, 우리 부부가 제주에 와서 차린 건 시골 마을의 작은 민박집이었다. 공항과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읍면지역의 시골 마을이었다. 오래된 돌집을 사서 수리하여 민박집을 열었다. 생애 첫 자영업이었다.


민박집 운영은 비교적 나쁘지 않았다. 한여름 객실 청소는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적당히 벌었고 때로는 적당히 여유로웠다.


그로부터 6년 후 우리는 폐업을 했다. 폐업의 이유는 좀 복합적이다. 손님을 대면하면서 겪는 사소한 감정 낭비부터 노후한 시설에 대한 재투자 여력까지 다양했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한 가지 일을 오래 해서 피로감이 쌓여서다. 민박집 일이라는 게 여유롭고 편하고 쉬워 보이겠지만 생각보다 노동량이 많고 신경 써야 하는 것도 많다. 6년 동안 달려왔으니 이제는 좀 쉬고 싶었달까.


단순하지만 몸은 힘든 이 지겨운 일상에 자극이 필요했다. 그래서 새로운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내세워서 과감히 폐업을 했다. 원래 일이란 언젠가는 그만두기 위해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대부분 회사원의 소원도 다름 아닌 퇴사일 테니까. 우리도 민박집을 영원히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고, 이쯤이면 그만 둘 때라고 생각했다.


근데 아마 장사가 계속 잘되는 중이었다면 그런 이유들이 내미는 유혹의 손길을 뿌리쳤을지도 모른다. 장사도 잘 되는데 폐업을 왜 해? 악착같이 일해서 돈 벌어야지 폐업은 무슨 폐업이야? 의 각오이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몸도 힘들고 하기도 싫은데 거기다 장사까지 예전만 못하니까 이참에 때려치운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퇴사가 실패가 아니듯, 폐업 또한 실패가 아니다. 제주로 와서 첫 자영업을 시작하여 6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 부부는 직장에서는 배울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다. 간단히 딱 하나만 말하자면, 좀 단단한 인간이 되었달까. 외부 요인에 의해 흔들리고 괴로워하지 않는 인간으로 새로 태어났다고나 할까. 6년 동안 민박집을 오고가는 수많은 손님들을 응대한 것이 얼마나 큰 공부였는지 모른다.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주는 기운이 세상에 얼마나 긍정적으로 작용하는지를 알았고, 무례한 사람들 또한 얼마나 다양하게 많은지도 알았다. 그리고 우리에겐 타인의 무례함이 어떠한 타격이 되지 않는 내성이 생겼다.


이건 좀 다르게 표현하자면 인류애의 재고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영업은 인간이 어디까지 무례할 수 있는지, 또 인간은 얼마나 따뜻하고 희망적일 수 있는지를 고찰하는 시간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인간, 그걸 줍는 것도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길에 쓰레기 버리는 인간에게 분노했다가 그걸 줍는 다른 인간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는, 뭐, 그런 거다.


어쨌든 첫 자영업, 그것도 철저한 준비도 없이 시작한 자영업 치고 아주 성공적이었다. 단언컨대, 폐업은 새로운 출발선으로 걸어가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폐업을 하니 지난날에 대한 회상을 하게 되었다. 10년 전, 제주에서 먹고 살만한 게 뭘까 고민하다가 결국 작은 민박집을 차렸다. 성취나 보람이나 자아실현 같은 덕목과는 관련 없는 일이었다. 그냥 딱 먹고 살 만큼만 벌자, 라고 시작한 일이었다. 철저한 시장분석도 없었고, 소규모 자영업의 현실이나 미래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마침 그때 제주도에 여행자 수요가 늘어나서 우리는 큰 노력 없이도 민박집을 열자마자 예약이 밀려왔다. 차리자마자 파리만 날리다가 문 닫는 식당이 얼마나 많은 줄 알기에, 철저한 준비 없이 시작한 첫 자영업을 6년 동안이나 운영한 우리는 정말로 운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인생에서 이룬 하나의 성공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생이라는 큰 줄기의 곁가지에 불과한 아주 단편적인 성공의 하나일 뿐이다. 제주로 오기 전 나는 직장생활을 실패했다. 정년퇴직은 고사하고 하루하루 위태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에 버림받기 전에 내가 먼저 버리련다, 의 각오로 사표를 냈다. 비록 나보고 나가라고 등 떠미는 사람 하나 없는 착한 회사였지만, 곧 망할 것 같다는 게 문제였다. 새 직장을 얻는 과정에서 겪을 거부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재취업 하기엔 높은 연차와 나이였다. 나는 사회에서 불필요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이 비참해질 것 같았고, 그런 식으로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내가 먼저 그 세계를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불필요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만은 느끼고 싶지 않았다.


퇴사 후 제주로 왔다. 다시는 직장생활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도시에서 살아남기를 실패했다.

내 인생에 실패가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겪은 실패들은 새지도 못할 만큼 많다. 시골에서 태어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들며 자란 나의 어린 시절은 내가 원하는 양육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효율적인 학습법도 모르는 채로 책가방만 들쳐 매고 다닌 학창시절 성적은 거의 바닥이었다. 친구들도 넓고 깊게 사귀지 못 했고, 연애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진로, 연봉, 이직 등등 뭐 하나 내 뜻대로 된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쯤 되면 폐업신고서를 작성하며 열패감에 사무친 눈물을 뚝뚝 흘렸어야 했다. 그리고 눈물 젖은 폐업신고서를 받아든 읍사무소 공무원의 난감해 하는 얼굴에 대고 나는 이렇게 이야기 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이번에도 실패했습니다. 흑흑.”


그런데 나는 폐업신고서를 작성하는 동안 마치 로또 당첨이라는 말 못할 비밀을 간직한 사람처럼 실실 웃고 있었다. 그뿐 아니다. 집에 와서는 이제야 청소와 빨래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기뻐하며 축배를 들었다. 우리에게 폐업은 실패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분명 곧 새로운 출발선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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