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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Sep 22. 2021

중요한 건 없다

나는 하드웨어 엔지니어다. 제주로 오기 전에도 하드웨어 엔지니어였다. 제주에서 10년 만에 나선 재취업 길에서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을 찾았다. 운이 좋았다.

요즘은 소프트웨어 분야가 조명받고 있으니 하드웨어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분야가 되었다. 그러나 어떤 직업이든 저마다의 존재 이유가 있다. 하드웨어 없는 제품, 하드웨어 없는 소프트웨어는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이 하드웨어 엔지니어가 필요한 이유이고, 내가 이 회사에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끊어진 경력을 이어 붙여 10년 만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마음의 준비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예전처럼 그저 버틴다는 심정으로 무기력하게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몇가지 다짐을 마음에 새겼다.


첫째, 회사에 기대하지 말 것. 회사에 직원은 많고 나는 그 중의 한명일 뿐이다. 회사는 일 할 사람이 필요해서 돈 주고 일시키는 것이다. 나는 돈을 받으니 일을 하면 된다. 묵묵히 내 일을 열심히 할 생각이다. 묵묵히 일한 결과 나는 성장할 것이고, 커리어가 쌓일 것이다.


둘째, 불만의 늪에 빠지지 말 것. 원래 회사는 제각각으로 엉망진창처럼 보인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또 알아서 잘 돌아가는 게 회사다. 불만의 늪은 한번 빠지면 절대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불평 할 시간에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지나 고민하는 게 낫다.


세째, 인정받으려 하지 말 것. 직장인으로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인정욕구라고 생각한다. 인정욕구는 긍정적인 동기로 작동하지만 어떤 경계를 넘어가면 집착의 불씨가 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을 인정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남한테 인정받을 필요 없다.


한때 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반드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것이 열패감으로 되돌아 왔다. 업계가 어려워지고 회사도 위태해졌을 때 나는 인정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좌절하는 유아처럼 투정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평범한 엔지니어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10년 만에 회사로 돌아오면서야 나는 그걸 인정했다. 아니 이건 인정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내가 최고냐 아니냐는 하나도 안 중요하다.


중요한 건 다시 예전처럼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기뻤다. 항해 중 부러진 노를 보며 절망했지만, 다시 노를 고쳤다. 다시 항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결국 전복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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