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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Oct 09. 2019

알바 아니고 프리랜서

친구의 민박집 청소 알바는 11시에 시작해서 오후 1시나 2시쯤에 끝난다. 크게 힘들지도, 바쁘지도 않는, 그래서 벌이도 크지 않는 그 일을 잠시 하고 말 줄 알았는데 일 년이나 할 줄은 몰랐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였지만,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것이 그 알바를 시작한 첫 번째 이유였다. 근데 이게 하다 보니 적성에도 맞고, 종일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나가서 사람도 만나고 (그래봐야 펜션 주인인 친구와 그 친구들뿐이지만) 이야기도 나누니 답답한 마음에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 한다.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마음의 가책 없이 책도 사고 카페에 가서 생크림 케이크도 사먹는 작은 사치를 누릴 수도 있었다.


어느 순간, 별로 힘든 일도 아닌데 일을 좀 더 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화가 우려되는 백수 생활 동안의 근심걱정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서, 겨우 책값이나 생크림 케이크 사먹을 돈 이상을 벌고 싶었다. 약간의 용기를 냈달까.


검색을 해보니 펜션 청소 알바 자리는 차고 넘쳤다. 밑천 필요 없어, 손님을 직접 대면할 일도 없어, 청소원 주제에 매출 걱정 할 필요도 없는 이 일이 어쩌면 나의 천직은 아닐까, 라고까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겹치는 곳이 많아서 일을 많이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지만, 시간 조정을 해서 할 수 있는 청소 일을 몇 개 따냈다.


이 나라에서 몸 쓰는 일은 대부분 시급 1만원 안팎으로 정해져 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쉴 새 없이 그릇이 쏟아지는 것처럼 힘들고 정신없는 설거지 알바도 시급 1만원이고, 아기 몸통만한 무 세척 공장 알바도 시급 1만원이다. 람보 정도의 근육맨만이 할 수 있는 육체노동이어야 겨우 시급 2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나 어릴 적 어른들은 사람은 자고로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했었나보다. 근데 내가 기술이 없어서 지금 이러는 게 아닙니다요. 나도 자격증이 있고, 기술도 있고, 경력도 있지만, 제주에선 쓸모가 없네요.


직업으로서의 청소원을 생각해 보았다.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그 일이 만족스러웠다. 단순노동이지만 나름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고, 직장에 매여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일상이 자유롭다. 저녁이 있는 삶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청소 일로 일인분의 벌이를 할 수 있을지 계산을 해보니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적당한 수준의 몸 쓰는 일이 갖는 마음 편함과 수입은 비례할 수밖에 없는 것이 노동시장의 이치 아닐까. 하지만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노동과 수입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일단 거기까지 가보고 난 후에 이 일을 더 할지 말지 고민하기로 했다. 계산만 하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일단 몸을 먼저 움직이자고 작정했다.


본격적으로 청소 일을 시작했다. 지역 커뮤니티에 청소원 구한다는 글에 응답하고 일을 따냈다. 경쟁이 있을 땐 나의 유려한 손놀림과 오랜 경력과 진정성을 어필하기 위한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유인물을 만들어 우체통에 꽂고 다니기기도 하고, 인터넷에 청소 일 구한다는 글도 올렸다. 점점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펜션, 빌라, 오피스텔 청소 일이 들어왔다. 다 내가 움직여서 따낸 일이다.


그렇게 몇 달. 수입은 많지 않았다. 시장에 일거리는 많았지만 나 혼자서 그걸 다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일정과 시간을 조율하며 움직여도 물리적인 한계가 너무도 분명했다. 빨갛고 탐스럽게 열린 딸기 밭에 조그만 바구니 하나만 들고 서 있는 것과 같았다. 좀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나 스스로를 청소 프리랜서라고 여기기로 했다. 좀 비장해지고 싶었달까. 언제든 그만둘 마음인 알바와 직업으로서의 청소원 중간쯤 되는 진지함이었다. 이 일에 많은 걸 바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나 나름 진지해, 라는 마음이랄까.

나, 앞으로 일인분의 벌이를 하는 청소 프리랜서가 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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