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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Oct 17. 2019

청소원, 미래의 시급은?

펜션 청소를 하다보면 ‘뭐 이것까지 할 필요 있나?’ 와 ‘여기도 해야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순간이 있다. 거의 후자의 선택을 하지만, 자주 전자의 유혹에 빠진다. 예를 들면, 2중창의 바깥쪽 창틀, 신발장 밑 보이지 않는 곳, 싱크대 서랍 모서리에 모인 작은 먼지, 전등갓 위의 먼지 같은 거.


하다보면 끝이 없는 게 청소다. 내 집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꼼꼼하게 할 리 없지만 돈 받고 하는 일이니 지적사항이 나오면 안 된다.


사실 누군가가 눈에 불을 켜고 청소 검사를 한다면 지적사항 100개는 거뜬히 찾아낼 수 있다. 신발장을 열어서 손바닥으로 슥 훔치면 먼지가 가득 나올 테고, 싱크대 하수구 그물망을 걷어보면 시커먼 곰팡이가 나올 테고, 변기 밑 굴곡진 부분에는 물때가 가득할 테고, TV 뒤 복잡하게 얽힌 전선에는 먼지가 내려앉아 있을 것이다. 식기 얼룩부터 프라이팬 손잡이 이음부 기름기까지, 찾자면 끝도 없다.


청소만은 절대로 AI가 대체할 수 없다. 두 팔과 두 다리, 열 개의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인간만의 영역이다. 작가도, 변호사도, 기자도, 아나운서도 AI에게 빼앗겨 없어질 미래의 직업이라는데, 청소만은 인간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러니까 지금 내 상황이 썩 좋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AI에 의한 고용위기가 닥칠 미래를 대비하고 있는 거라고 위로해 본다. 미래에는 ‘전문직’의 개념이 달라질 지도 모른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그게 전문직이 아닐까.


언젠가는 지금보다 훨씬 진화한 로봇 청소기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변기 구석까지 세제 뿌려서 솔로 박박 문지르는 로봇이 나온다면야 인간 청소원도 일자리를 위협받을 지도. 근데 그거 아나? 설령 그런 로봇이 나와도 인건비가 더 쌀 거라는 거.


작년에 장사가 엄청 잘되는 카페에서 설거지 알바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내 인건비가 한 시간동안 소비되는 일회용 컵 값보다 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카페에서 한 시간 동안 팔리는 음료를 일회용 컵에 담아서 내준다고 가정하고 대충 계산해 보니, 만원인 내 시급이 컵 값보다 더 싸더라.


만원. 그때 당시 최저임금 8,350원보다 1,650원이나 더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런 단순노동에 시급을 만원이나 준다는 건 엄청난 시혜를 받은 거다. 근데, 5일째 되는 날 그곳을 박차고 나왔다. 입에서 쌍시옷 욕이 저절로 나왔다. 단순노동으로 돈을 벌겠다는 나의 야심이 위협받는 순간이었다. 단순노동 시장에서는 시급 만원에 넙죽 절이라도 해야 하는 게 현실일까.


정말로 미래에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한 로봇 청소기가 나온다 하더라도 인건비가 훨씬 쌀 거다. 그때가 되면 인간 청소원의 인건비는 로봇의 유지보수비와 경쟁해야 할 것이다. 로봇 할부금이랑 전기세랑 수리비 계산하면 차라리 사람 쓰는 게 더 싸! 라는 말이 나오도록 말이다. 어쩌면 AI와 경쟁해야 하는 미래의 모든 직업이 그렇게 되지 않을까? AI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전문직을 빼고, 모든 직업이 시급 만원으로 통일될 지도 모른다.


청소. 과연 미래의 전문직이 될 것인가, 만원으로 통일된 모든 직업 중의 하나가 될 것인가? 웃자고 하는 소리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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