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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Aug 04. 2020

10년 만에 재취업에 나섰다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내가 쓰는 이야기는 곧 나 자신이다. 지금까지 쓴 나의 작품들은 세상에 있으나마나 한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나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글이 있어서 행복하다. 세상이 알아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오래도록 나만의 글을 빚어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의 잉태처럼 작은 점에서 출발하여, 투박하지만 형태를 가진 무언가가 되어서, 세련되고 깊이 있는 언어로서의 품격을 갖추는 데 일생을 보내는 일은 너무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어가 없는, 아니 의사소통의 기능을 넘은 풍성하고 정교한 언어가 없는 생물의 일생이 어떠할지는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자신만의 언어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림이 자기의 언어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사진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또는 춤으로, 노래로 자기를 표현한다. 누군가는 직업이 자신의 언어이기도 하고, 일생 자체가 그의 언어였던 역사 속 인물도 많다. 나는 글이라는 나만의 언어를 일생을 거쳐 정교하고 아름답게 빚어가고 싶다.


그런 나에게 필요한 건 직업이었다. 작가라는 일을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직업 말이다. 나에겐 돈을 버는 직업이 필요했다. 본업과도 같은 청소 일은 결국 이대로는 일인분의 벌이를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소 섣부른 판단이다. 나에게 시간이 좀 더 있다면 그런 결론을 내진 않았을 것이다. 방역, 제초, 집수리, 타운하우스 관리 등 전문분야를 더 늘려서 업체를 차리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나에겐 시간이 없었다.


회사생활이 죽도록 싫어서 피난 오듯 제주로 내려와 놓고서 다시 취업을 하기로 했다.

취업은 쉽지 않았다. 제주에서 보낸 시간만큼 끊겨버린 경력과 그만큼 먹어버린 나이가 사회와 나 사이에 커다란 장벽을 세워 놓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구인 글 대부분은 나이무관이라고 써놓고 청년층 우대라고도 써놓았다. 우리 회사는 굳이 나이를 따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45살 먹은 아저씨를 뽑을 생각은 없어, 라는 뜻이다.


나는 사회로부터 격렬하게 거부당하고 있었다. 나는 사회에서 거부당할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제주에서 글을 빚는 동안 나는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눈높이를 낮춘다는 마지막 옵션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나에겐 그것마저도 무력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 만든 그물이었다. 나는 제주로 오기 전 나의 직업이 무엇이었는지, 나의 연봉이 얼마였었는지, 내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땠었는지를 떨쳐내지 못 하고 있었다. 제주의 채용시장에는 차마 이런 일까지는 못 하겠어, 에서 “이런 일”을 하는 일자리가 대부분이었다. 양질의 일자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제주의 현실을 한탄할 뿐 눈높이를 낮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힘들고 지치게 한 일로부터 도망쳐 제주로 와 놓고선 아직도 그때의 나를 떨쳐내지 못한 채 그물에 갇혀 있는 것이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세상의 모든 직업은 숭고하다, 라는 나의 소신은 위선이고 가식이었던 것이다.


그 질기고 강한 그물을 찢는 것이 재취업을 향한 첫 번째 관문이었다. 그것은 나만의 작은 투쟁이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나는 취업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월급. 오로지 월급 하나면 된다. 경력을 인정받고 능력도 인정받는 직장을 바라기엔 나는 그동안 사회를 적대시 해왔다. 무례하고 폭력적인 사람들이 득실대는 지옥 같은 곳이라고 폄하하고 도망쳐 와놓고선 이제 와서 다시 제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요, 라고 하기엔 너무 염치 없달까.


긴 시간의 투쟁 끝에 나는 그물을 찢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물보다 강한 건 내가 무능력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돈은 많은 것을 지켜준다. 건강도, 자아도, 관계도……. 경제적 무능력을 욕심 없는 삶으로 변질시켜 정신승리 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겐 직장이 필요할 뿐이었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 인식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월급이 좀 적어도, 그다지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 아니어도 지금의 내가 필요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긴 투쟁을 끝내고 내가 들어간 회사는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의 한 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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