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방의 공돌이 Aug 24. 2020

나는 공장 노동자다

회사를 공장이라고 부르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외근 나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밥에게 “우리 사무실 들어가면, 아니 아니 공장 들어가면......” 이라고 수정하는 일이 잦았다.


3개월 쯤 지나니 공장이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 10년 만에 새로 시작한 회사생활에 적응하기까지 대략 3개월 정도가 걸린 것 같다. 무섭게만 느껴지던 전동그라인더나 절단기가 내는 굉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된 것도 대략 3개월이다.


좀체 적응하기 힘들었던 환경을 완전히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이 3개월 정도인 것 같다. 내가 공장에 다닌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시간, 생전 사용해본 적 없는 각종 도구와 장비의 사용법에 익숙해지기까지의 시간, 안 쓰던 근육들이 더 이상 비명을 질러대지 않게 되기까지의 시간, 그리고 책상 앞이 익숙한 몸이 가진 고질적인 어깨와 목 통증이 사라지기까지의 시간이다. 참, 하나 더 있다. 어느 날 문득 팔뚝을 만졌는데 알통이 만져지기까지의 시간이기도 하다. 감동적이었달까. 믿을지 모르겠지만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근육이었다.


출근 후엔 책상 밑에 둔 작업화로 갈아 신는다. 작업화가 뭐냐면 밑창과 발등이 쇠로 되어 있어서 날카롭거나 무거운 게 떨어져도 발을 보호할 수 있는 신발이다. 기능성에 충실할 뿐 스타일이나 멋과는 거리가 좀 멀다.

무겁고 못생긴 신발이라 일할 때만 신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갈아 신는 게 귀찮아서 아예 그걸 신고 퇴근하고 출근했다. 공장에서도 신고 출퇴근 때에도 신다보니 이게 마치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듯 익숙하고 편해졌다.


사실 3개월 동안 마음이 뒤숭숭했다. 10년 만에 다시 다니게 된 회사가 공장이라는 사실이 썩 유쾌하거나 좋지는 않았다. 누가 봐도 좋은 직업이 아니다. 중요한 인재로 존중받는 느낌도 없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전공지식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굳이 대졸 학력이 필요하지도 않는 것 같다. 공업고등학교 졸업생의 수준이면 된다. 그러니까 굳이 나여야 할 이유가 없는 일자리다. 월급을 많이 줘서라도 나를 꼭 데리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일자리.


어쩔 수 없다. 경력은 끊겼고, 남들 열심히 일 할 때 난 글이나 썼으니까. 오래도록 경력이 끊어져 있던 그 자리를 10년 만에 찾아가 아무렇지 않게 이어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창조해낸 두 편의 장편소설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경력이 끊긴 그 자리에서 나를 먼 곳에 데려다 놓았다. 나는 세상에 굳이 필요하지도 않는 걸 만들어 내느라 시간을 보낸 것에 불과했다. 공장은 그 대가다. 일하지 않고 글이나 쓴 대가. 나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받아들이는 것 말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냥 아무 직장이나 필요했을 뿐이었던 초심을 떠올렸다. 집에서 가깝고, 월급 적당하고, 칼퇴근 하고, 스트레스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초심 말이다. 이 공장은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다. 8시 출근하여 5시에 칼 같이 퇴근한다. 이런 단순노동에 가까운 공장 일에 업무 스트레스 같은 게 있을 리도 없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바라는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3개월 쯤 지나 공장생활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비장해지기도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멋있게 하고 싶었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면 못생긴 작업화가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받아들여.”


나는 공장 노동자다. 그러기로 했다.

무겁고 못생긴 작업화가 편안했다.

이전 11화 슬기롭지 않은 공장생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