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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Aug 30. 2020

이건 내 인생이니까

주문제작인 기기의 프레임은 사각 파이프를 재단하고 용접해서 만든다. 용접공이 필요한 일이다. 근데 우리 회사에는 용접공이 없다. 내가 입사한 지 한 달 후에 퇴사를 했다.


용접공의 퇴사는 예정되어 있었고, 새 용접공을 뽑지 못할 것 역시 예상되었다. 사람 뽑는 게 참 어렵다. 특히 이런 읍면지역의 공장에서는 더. 엄청난 기술자는 월급을 많이 줘야 한다. 엄청난 용접 기술자는 오버다. 나이가 적당히 적고 경력도 적당히 적은 기술자를 뽑아야 한다. 근데 대단한 기술자 뽑는 것도 어렵지만 적당한 수준의 기술자를 뽑는 건 더 어렵다.


회사는 중요한 이가 빠지게 되었고 그 자리에 새 이를 해 넣기 보다는 잇몸이 대신 그 일을 해주기를 바랐다. 잇몸은 바로 나였다.


용접. 멋있어 보였다. 솔직히 별로 어려워 보이지도 않아서 흔쾌히 내가 하겠다고 했다. 거대한 발전소 설비나 가스관 같은 건 고난이도의 용접기술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조선소 용접공 역시 엄청난 기술자일 것이다. 근데 나는 고작 파이프 몇 개 이어 붙여서 사각 상자를 만들면 되는 거다.


용접공이 퇴사하기 전 한 달 동안 그에게 특훈을 받으며 용접을 배웠다. 생각대로 별로 어렵지 않았다. 아니 어렵긴 하지만 그게 엄청난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은 아니니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파이프를 붙이기만 하면 되는 낮은 수준의 기술이니까. 단지 숙달이 필요한 일이고, 시간과 노력이 그것을 해결해 주었다.


재단하고 남은 자투리 파이프가 공장 한편에 쌓여 있었고, 나는 한 달 동안 그것들을 가져다 용접봉으로 지지고 볶으며 철의 탑을 쌓았다. 처음엔 툭하면 파이프가 뚫리거나 파이프에 용접봉이 눌러 붙어서 난감했다. 숙련도를 올리는 데에 필요한 건 연습뿐이었다. 지식은 필요 없고 감각만 익히면 되는 단순노동이었다.


최대 3mm 오차로 직사각형 상자 프레임을 만들어야 하는데, 열을 가함으로서 수, 팽창하는 쇠의 성질도 익혀야 했다. 혼자서 프레임을 서너개 쯤 완성했을 때 나는 용접기와 각종 도구들을 완벽하게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후부터 만든 프레임은 전부 1mm 오차 내로 들어왔다. 사실 3mm냐 1mm냐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닌데 나는 최선을 다했다. 용접공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숙련되자 용접을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퇴근 전 세수 한 얼굴을 닦으면서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집에 와서 땀에 젖은 옷을 벗어 던지며 내 안에 알 수 없는 충만감이 쌓이는 것을 느꼈다.


출근을 하면 음악을 튼다. 용접을 할 때는 보통 헤비메탈이나 록 음악을 튼다. 뭔가 어울린달까. 전동그라인더가 갈아내는 붉은 쇳가루, 직각을 유지하기 위해 체결해 놓은 도구가 지탱하고 있는 팽팽한 힘, 파이프에 용접봉이 닿을 때마다 피어오르는 탁한 연기, 헬멧 너머에서 전해지는 열기, 모양을 갖춰가는 프레임...... 때마침 울려 퍼지는 본조비의 It's my life.


용접을 시작하고 한동안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단지 몇 번 쪼그려 앉았다 일어났을 뿐인데, 3kg 정도 되는 파이프 몇 개 들었다 놨을 뿐인데 퇴근 후 입에서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나왔다. 아내에게 티내지 않으려고 새어 나오는 아이고를 참느라 어금니에 꾹 힘을 주었다. 내 몸은 책상 앞에 익숙했고,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들은 주인의 갑작스런 소환에 응답하느라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러댔다.


시간이 지나 모든 근육들이 적응을 마치고 파이프 몇 개 정도 한손으로 가볍게 들게 되었을 때, 본조비가 이게 네 인생이야, 라고 공장 안이 다 울리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었다. don't bend, don't break, don't back down. 난 굽히지도, 꺾이지도, 물러서지도 않을 것이다. 이건 내 인생이니까. 본조비도, 나도 그렇게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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