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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Nov 30. 2020

중장년도 쓸 만하다니까요

대략 마흔 살쯤부터는 자신의 나이를 인식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더라. 대부분 자기가 몇 살인지도 까먹고 산다. “내가 올해 마흔두 살인가 세 살인가?” 이렇게 된다. 40대 대부분의 정신적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에 머물러 있다. 나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더라. 내가 취업시장에 다시 나오기 전까지 내 나이가 45살인 줄 몰랐다.


회사에선 특별히 나이가 좀 많은 사람을 뽑자, 라고 결정하지 않는다면 굳이 중장년을 뽑지 않는다. 중장년은 중장년을 뽑아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만 간택당할 수 있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입사 후에 “어린 친구한테 맡겨 놨더니 영 관리가 안 되어서......” 라는 말을 들었다. 전임자에 대한 평가였다. 그러니까 이번엔 나이 많은 사람을 뽑아보자, 라는 결정이 나서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런 경우가 아니고서야 중장년층이 아무리 이력서를 들이밀어도 입사는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젊음은 활기와 성장을, 늙음은 퇴화의 의미로 인식한다. “청년층 우대”라는 문구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문신처럼 구인 글마다 박혀있다.


나는 공장에서 어린 친구한테 맡겨 놨더니 영 안 되었다던 그 관리를 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청년층 우대만을 부르짖는 취업시장에서 과감하게 중장년을 고용한 의도에 충분히 부응했다고 생각한다. 중장년도 쓸 만하다고, 아니 중장년이 훨씬 낫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사명감으로 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 많은 사람을 뽑았더니 영~” 이런 평가를 받으면 절대로 안 되니까.


쓰레기하치장 같던 공장의 진열장은 질서정연해 졌고, 바닥은 매끈해졌다. 공장 구석구석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고, 어떤 현장에 설치한 기기에서 언제 어떤 문제가 발생했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도 생겼다. 다 내가 한 일이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내가 했다. 내가 그만두고 새 직원이 오더라도 조립설명서를 보고 기기를 제작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만든 각종 자료들은 새로운 모델을 개발할 때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회사는 그 자료를 가치 있게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필요하다고 생각한 일을 했을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것이 일개 공장 노동자인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거기는 쇠 깎고 용접하는 공장이었다. 


공장은 비전도 계획도 없어 보였다. 뭔 계획이 있겠지? 라는 마음으로 다닌 지 6개월째 되는 어느 날 공장에서 중대 발표를 했다.


전 직원 3개월 무급휴직.


회사가 어렵다고 했다. 내가 걱정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3개월이 지나면 정상경영이 될까? 희망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희망의 단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나도 나는 공장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중장년 공장 노동자는 이제 어디로 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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