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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Feb 28. 2021

뭐가 되지는 못했지만

다시 동네의 작은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LED 가로등을 생산하는 공장의 생산관리직으로, 역시나 보수가 적었지만 집 가까운 곳에서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일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공장은 모든 면에서 허접함을 참아내야 하는 곳이었다. 회사는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곧 품격이라는 걸 몰랐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공장 노동자 취급” 이라는 응대법이 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설명하기 어렵다. 그저 “동네의 작은 공장”이라는 세계에서는 사람의 지위가 그 바깥 세계보다 낮다는 것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특히 위에 하나 있는 부장이 이상한 사람이었다. 설명하기 어렵다. 어디서도 마주치고 싶지 않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는 지식이 부족한 걸 부끄러워했고, 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 버릴까봐 노심초사 하면서 기회를 틈타 수시로 괴팍해지는 인간이었다. 한마디로 개새끼였다. 나는 이런 회사에서라도, 이런 사람과라도 일해야 하는 처지였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를 꼭 죽일 것이다.


집 근처의 작은 공장에서 일 년 가까이 일하며 중요한 걸 깨달았다. 그게 뭐냐면, 나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라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대단한 경력과 능력을 가진 사람인가. 그동안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아주 대단한 능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 작은 실험을 하는 것 조차도 이 공장에선 아주 대단한 능력이었다. 논리성을 갖추어서 어떤 실험을 하는 건 엔지니어에겐 평범하고 일반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저 상식으로만 생각했다. 지식이나 학위가 필요하지 않다. 그냥 상식적인 일이었다.

1년 동안 시골의 작은 공장에 다니고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아! 나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엔지니어였구나!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연구개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격무와 스트레스로만 기억되던 과거의 내 직업. 다시 엔지니어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물론 쉽지 않겠지. 나는 경력이 10년이나 끊겼으니까.


공장을 다니며 공부를 했다. 현실은 현실이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제주도에서 적극 육성 중인 신재생 에너지 관련 공부를 했다. 업계 동향과 기술 자료를 찾아서 정리하고, 관련 학과 교재를 사서 공부했다. 녹록치 않는 현실 앞에서 작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뿐이다. 기회가 언제 올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지만, 기회가 왔을 때 그걸 잡을 준비를 하는 건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감의 힘을 신뢰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자신감이 해결해 준다고 믿는 편이다. 다시 엔지니어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 역시 자신감이었다. 10년이나 경력이 끊긴 사람을 누가 뽑아줄까, 라는 생각 따위는 떨쳐버렸다. 오래 전 첫 소설을 발표할 때도 그랬다. 내가 쓴 소설을 누가 읽어줄까, 괜히 비웃음만 사는 건 아닐까, 라고 걱정하며 다 쓴 작품을 노트북 안에 담아두고만 있었다면 나는 소설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쓴 소설이 최고다, 라는 자신감으로 세상에 내놨을 때 비로소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마침내 한 기업의 연구소에서 모집공고가 났을 때 자신감을 갖고 응시했다. 그동안 공부하고 정리한 자료도 첨부했다. 10년이나 끊긴 경력을 이어붙이기 위해 이만큼 노력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면접 기회가 주어진다면 프레젠테이션도 할 생각이었다.


자신감과 간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간절함을 드러내면 그것이 약점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건 건강하지 않은 관계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시기와 질투가 침투해 있는 관계에서는 그것이 약점이 된다. 그러나 회사는 일 할 사람을 원하고 있다. 나처럼 오랜 시간 경력이 끊긴 응시자로서는 간절함 역시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면접 기회가 주어졌고, 한 시간 넘는 면접을 그쳐 그 회사에 합격했다.

나는 경력 단절이라는 결정적인 핸디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뽑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자기소개서를 통해, 그리고 면접을 통해 자신감과 간절함이 잘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능력 밖의 일을 할 수 있다고 거짓말 한 게 아니라 오랜 시간 공부하고 준비하여 얻은 실제의 자신감이었다. 간절함 역시 뽑아만 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막무가내가 아니라 내가 다시 엔지니어로 살고 싶은 이유와 각오를 솔직하게 밝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로 오기 전, 업계에 부는 불황과 업체 간 경쟁으로 내가 계속 엔지니어로 살기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격무와 스트레스도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제주로 왔다.

제주에서는 꿈을 이루었다. 작가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후 내가 계속 작가로 존재하기 위한 노력과 고뇌들로 벅찼다. 생업으로서의 작가를 포기하기까지의 시간 역시 찬바람 부는 객지를 떠도는 것처럼 불안하고 힘겨웠다.


지금 나는 포근한 마음으로 회사에 다니고 있다. 따뜻한 집으로 돌아온 것 같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뒤에서 회사 욕도 하고 그만두고 싶다고 투덜댈 게 뻔하다. 직장생활이 다 그런 거다. 그러나 분명한 건 번아웃, 조기은퇴, 귀촌, 자영업 등의 주제어로 고민하는 많은 중년들보다 앞서 나는 좀 더 일찍 회사 밖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중년이 되기 전에 회사 밖 생활을 한 것이 나에겐 중요한 경험이었다. 때론 제주로 오지 말고 회사에서 버텼어야 했나, 하고 후회했다. 때론 제주로의 이주를 잘한 선택이었다고 나를 칭찬했다. 결과적으로 작가라는 꿈을 이루었다.

어릴 때부터 소망하던 꿈 하나를 이룬 것은 인생이라는 큰 항해에서 의미 있는 한 번의 노질이었다. 그러나 그 의미 있는 노질을 계속 이어가지 못했다. 결국 뭐가 되지 못했다.

아쉬움은 없다. 꿈에 닿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영원히 미지의 세계로 남게 된다. 그 세계는 가슴에 뚫린 커다란 구멍이 되어 현재의 내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지게 한다.


어떤 사람은 꿈을 이루는 것에 의미를 둔다. 또 어떤 사람은 꿈에 닿기 위한 과정에 의미를 둔다. 나는 크고 작은 파도를 넘고 있는 이 항해에서 전복되지 않는 것만큼 의미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삶을 지키는 것 말이다. 나는 결코 전복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이 직장은 크고 작은 파도를 넘은 후 만난 맑은 바다와 같다.

나는 결국 뭐가 되지 못했지만, 지금의 맑은 바다 위에서 다음 파도를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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