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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Aug 22. 2021

다시 워커홀릭이 되어

나는 워커홀릭 기질이 있다. 중증 워커홀릭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일에 대한 강박과 집착이 있는 편이다. 길고 짧은 프로젝트들을 하다 보니 그날 일이 그날 끝나지 않는다. 어떤 문제는 해결하는 데 며칠이 걸리기도 하고, 몇 주가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오후 6시 이후에도 딸깍하고 스위치가 오프 되지 않는다. 평소 잔걱정 많기로는 전국 100등 안에 들 정도라고 자신할 수 있는 초예민인인 나는 퇴근해서도 일 생각, 주말에도 일 생각이다. 그래서 과거에도 직장생활이 남들보다 몇 배로 힘들었던 것 같다.


이놈의 회사를 떠나야 내가 살지, 의 심정이 제주 이주의 촉발점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제주로 왔는데도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고 빈둥거리지 않게 되더라. 자영업을 하며 겉으로 빈둥대는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했으나, 감정과 에너지 조절을 못 해서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다. 결국 좀 쉬자고 마음먹고 일을 놓아버리니 게으름에 대한 죄의식과 불안감이 자랐다. 남들 열심히 사는데 난 이게 뭔가, 라는 죄책감, 그리고 이러다 지금보다 더 가난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괴롭혔다.


돌고 돌아 원점으로 와 직장인이 되자 워커홀릭 기질은 다시 발현되었다. 여전히 일 생각을 멈추지 않고, 적당히 쉬어가며 연차휴가를 소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걸 스스로를 옥죄지 않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려고 한다. 사실 나정도 연차와 나이가 참 애매하다. 개발 실무 능력도 잃고 싶지 않고, 비즈니스도 알아야 한다. 실은 후자 쪽의 능력을 키우는 게 바람직한 커리어 관리라고 생각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 직장, 다음 자리를 위해서라면. 그러나 10년이나 경력이 끊긴 나는 감각, 인맥, 경험 등 연차에 비해 모든 면이 후퇴해 있다.


빨리 따라잡고 싶다. 그렇다고 초조하진 않다. 40대 중반이니까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에너지 조절 못 해서 나가떨어지면 안 된다. 그래서 임팩트 있는 자기계발이나 커다란 성과를 위한 노력보다는 출퇴근길의 풍경에 감동받고, 잦고 작은 성취에 기뻐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려고 한다. 긴 시간 비어있던 커리어를 채우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실하게, 그러나 조급하지 않게.”


워커홀릭을 좀 좋게 해석해 보자면 보통 사람들보다 감각기관이 더 열려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심적으로 피곤한 경향이 있지만, 무덤덤하고 무감각한 사람들이 놓치는 것까지 채우는 사람들이다. 주변에 있는 친절하고 다정하고 꼼꼼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을 보라. 회사는 그런 사람의 존재를 모르겠지만, 언제나 일이 잘되게 끌고 가는 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일에 대한 집착으로 괴로워하기보다는 이 기질이 삶을 지탱하는 데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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