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서 한 2년 정도는 한량처럼 먹고 놀아도 괜찮지 않나, 놀면서 글이나 실컷 쓰지 뭐, 라고 생각하며 폐업을 했었다. 글쓰기가 나에겐 휴식이고 취미이고 자기 계발이자 치열하고도 내밀한 지적유희니까. 민박집을 운영하느라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였기에, 폐업을 하면 차고 넘치는 게 시간일 테니 글을 실컷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1년이 지났다.
나는 벌이 없이 2년이나 먹고 놀 멘탈의 인간이 결코 아님을 알았다. 사람이 살면서 이정도 호사는 누려도 된다는 당당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밤낮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앞으로 뭘 할지는 쉬면서 천천히 알아보지 뭐, 라고 생각하며 여유롭게 백수생활을 즐길 줄 알았다. 근데 막상 백수가 되니 그게 그렇지 않더라. 따지고 보면 당연한 거다. 뭐하나 보장된 게 없으니 마냥 맘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취업이나 창업에 유용한 기술이라도 있다면 마음에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취업 시장에서 내세울 만한 기술이 내게는 하나도 없다. 딱히 도전정신도 없고, 그냥 편하게 먹고 살고 싶은 마음뿐이어서 삶에 대한 뜨거운 투지도 없다. 그러니까 백수로 지낸 지난 1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나 자신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상에 이리 한심한 인간은 없을 거라는 결론 앞에 자책하는 나날의 연속이다.
무슨 장사든 해야 할 것 같은데, 하고 싶지가 않다. 계속 먹고 놀 수는 없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커지지만, 대책 없이 장사를 시작하고 싶지도 않다. 도전할 가치가 있거나, 꼭 하고 싶거나, 어느 정도는 시장성이 있는 일도 아닌데 무언가에 쫓겨서 시작하고 싶지 않다. 참신한 아이디어나 거대한 자본 없는 소규모 자영업은 그 일에 뼈를 갈아 넣어야 한다. 제대로 전투력을 장착하지도 않고 시작해봐야 결과는 뻔하다.
제주에서 장사는 뭐라도 차리기만 하면 손님이 오던 8년 전과는 많이 다르다. 시골 마을을 걷고 마을 안의 작은 가게를 좋아하는 여행객은 이제 거의 없고, 관광지와 박물관과 테마파크에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제주에서 자영업은 규모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이 치열하고도 거대한 전쟁터에 뛰어들 각오 없이 어설프게 장사를 시작하고 싶지 않다. 여기서 어설프다는 건 억대의 투자금과 마케팅 기법 없이 우리가 가진 취향과 정서를 내세워서 작은 가게를 연다는 뜻이다. 현재의 제주에서 그건 ‘어설픈’ 가게다.
몇 년 전, 시골 마을 골목에 있는 작은 소품 가게들이 잘되자 명동 다이소급 규모의 소품 숍이 공항 근처에 생겼다. 명동 다이소급 규모의 소품 숍은 시장을 제대로 읽었고, 그 후 시장을 장악해 갔다.
오래 전 제주를 찾는 여행자들은 그 가게만의 정서와 취향을 좋아했었다. 그 가게를 채운 소품들이 가진 이야기를 좋아하고, 제주에 살며 그런 이야기들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흥미있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비슷한 취향과 정서를 가진 소수의 사람만이 그 안에 있는 이야기를 알아챌 수 있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것들을 알아채지 못한다. 아니 관심이 없다. 디자인은 쉽게 베껴지고, 어딘가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제주도로 납품된다. 그 안에 담겨 있던 이야기는 실종되고 대량 납품의 혜택인 가격 경쟁력이 부각된다.
제주의 새 카페는 규모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이름부터 울트라 **, 하이** 이런 식이다. 카페는, 과거에는 작은 카페의 주인이 추구하는 취향과 정서를 소비하던 소규모의 수요가 있었지만, 이제는 태풍에도 끄떡하지 않는 두꺼운 통유리 너머의 오션뷰와 전문가의 손길로 탄생한 인테리어와 수십 종의 베이커리로 무장한 대형 카페를 찾는 대중적 시장이 되었다.
작게 존재하는 것만이 옳고 대규모는 파괴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어떤 시장이든 결국 규모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나라 자영업의 현실이다. 오래도록 작게 존재하는 것이 소규모 자영업자의 가장 큰 숙제인 것이다.
작은 민박집과 게스트하우스도 똑같은 경로로 소멸해 간다. 이건 예정된 일이었다. 우리들이 제주에 와서 차린 농어촌민박집은 하룻밤에 3만원 하던 할머니들 민박집의 먹거리를 빼앗았다. 이제는 하룻밤에 3만8천원짜리 호텔들이 농어촌민박집의 먹거리를 다 빼앗았다.
이건 사드(THAAD)라는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기이한 무기체계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사실이다. 중국 관광객들 없어도 제주도 사람들 먹고 사는 데 아무 문제없다고 큰소리 치고 싶지만, 현실은 그게 전혀 아니올시다, 다. 크루즈선과 항공기로 쉴 새 없이 실어 나르던 중국 관광객이 사라지자 객실이 텅텅 비게 된 호텔들은 직원들 월급이라도 주기 위해 하룻밤에 3만8천원, 혹독한 비수기에는 1+1day 특가 이벤트를 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렇게 대규모로 남아도는 객실들이 후려치는 가격 앞에 마을 안 작은 민박집들은 나가떨어질 수밖에 더 있을까.
제주의 현실이 이러하니 더이상 제주에서 뭘 해볼 엄두가 안 난다. 그래서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육지로 가서 대출 얹어서 작게 펜션이라도 할까도 생각해 봤다. 약간 오지스러운 곳을 찾아보면 땅값이 싼 곳이 있지 않을까. 대충 땅값과 건축비를 계산해보면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지분의 대부분은 은행이 갖게 될 테지만.
근데 그렇게 사업을 시작하면 과연 몇 년 정도 먹고 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망하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그게 전제다. 장사가 안 되면 안 돼서 망할 거고, 잘되면 근처에 우리보다 더 크고 고급스러운 펜션이 수십 개가 새로 생기기까지는 3년이 채 안 걸릴 거다. 소규모 자영업의 지속하기 위한 노력은 단지 얼마나 오랫동안 안 망하고 먹고 사느냐에 초점이 갈 수밖에 없다.
가격과 시설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 그때는 펜션을 팔아야 한다. 근데 그거 팔려고 내놓으면 과연 팔릴까? 지방 시골의, 지은 지 3년이 넘은, 크고 고급스러운 펜션들 사이에 끼어 있는, 장사가 잘 안 될 것 같아 보이는 작은 펜션을 말이다. 결국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할 때처럼, 정상에 있을 때 이별을 고하는 것이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여러분! 저희는 정상에 있는 지금이 여러분의 곁을 떠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떠날 수가 없거든요.” 라는 심정으로 부동산 사무실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영업 개시 1~2년차 쯤, 장사가 잘 될 때 매물로 내놓아야 사려는 사람이 달려들 것이다. 그 시기를 놓치면 빚까지 내서 야심차게 지은 펜션은 수익도 안 나고 처분도 안 되는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다.
주식도 그날 샀다가 그날 파는 시대이고, 2년마다 이사 가는 게 별 일 아닌 시대인데 1~2년 장사 하려고 빚내서 땅 사고 건물 지어서 장사 하는 게 무슨 대수인가 싶기도 하다. 그냥 안 내키니까 이러는 거다. 최소한 10년을 지속하기 어렵고, 그 후 처분하려해도 할 수도 없는 사업을 시작한다는 건 당장의 배고픔을 위해 불지옥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달까.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오지도 않은 앞날을 걱정하느라 아무 일도 안 하는 게으르고 나태한 자의 푸념이다. 인정한다. 쓸데없이 생각이 너무 많다. 그게 문제다.
오지도 않은 앞날을 미리 걱정하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시작해서 길을 열어가는 것이 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산다는 게 그런 것이기도 하니까. 꽃길만 기다리며 주저앉아 있다가는 그 자리에서 굶어죽고 만다. 힘든 시간을 견디고 때로는 고통과 고난을 이겨내며 꾸역꾸역 살아내는 것이 삶의 본질이 아닐까, 라고 저 앞에서 쓴 것 같은데!
나에게 필요한 건 시장 분석력이 아니라 아주 약간의 용기일 뿐인데, 그게 그리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