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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Oct 02. 2019

설렘의 유통기한

제주로 온 첫해부터 3년차 정도까지는 시골생활의 낭만에 잔뜩 취했었다. 때로 민박집 운영이 힘들어서 한숨 쉰 날이 있었지만, 긴장감 없이 풀어진 채로 지내도 되는 시골생활이 깨나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출퇴근에서 해방되어 비교적 자유로운 일상을 보낼 때라던가, 평소에 그리워하던 숲과 바다가 지척에 있다는 사실이라던가, 긴장감이라곤 티끌만큼도 없이 흐트러져도 되는 머리나 복장으로 돌아다닐 때라던가. 제주에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는 특별하게 살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제주로의 이주가 우연이나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직접 선택했다는 사실이 내 삶을 더없이 멋져보이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고 촌스러운 자신감으로 이 일대를 싸돌아다니기도 했는데, 그 결정판은 바로 관리되지 않은 용모와 시골 복고풍 패션이었다. 머리와 복장에 있어서 긴장감을 내려놓으니 도시에 살 때처럼 머리를 단정하게 관리할 필요가 없었다. 근처에 갈만한 미용실도 없어서 머리는 기를 수 있는 만큼 길렀다가, 이러다 목 디스크가 걸리겠다 싶을 때쯤 욕실에 들어가 무거워진 머리카락을 가위로 슥슥 깎기도 했다. 또한 그냥 트레이닝복만 입고 다녀도 별 문제가 없었는데, 나는 좀 더 특별하게 오일장에서 감색 물을 들인 개량 한복 바지를 사서 입었다. 일명 고무줄 바지.


정말 편하고 좋았다. 의복이라 함은 편함과 멋짐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으로 내가 한 옷의 주인이 되기 위해 지갑을 열기까지는 깊은 고뇌가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나는 시골에 살고 있고, 멋짐을 뽐낼 이유가 없었다. 오일장표 고무줄 바지의 편안함에 길들여져서 똑같은 걸 세 개나 사서 돌려 입었으니, 나는 마치 검정색 터틀넥과 청바지만 입었던 스티브 잡스처럼 아직은 발견되지 않은 어떤 분야의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곤 했다. 지금도 특이한 취향의 패턴은 천재성과 어떤 연관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몸에서 냄새만 안 나면, 촌스럽다고 누가 욕할 것 없는 시골살이다. 그 당시 비슷한 시기에 제주로 이주한 친구들 대부분도 마치 특권처럼 촌스러움을 과시하고 다녔으니, 그건 늘 용모단정을 요구당한 도시생활에서의 염증으로 잉태한 일종의 판타지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우리들은 당당하게 고무줄 바지와 덥수룩한 머리로 런웨이를 걷듯 이 일대를 돌아다니며, 아~ 인생은 정말 낭만적인 것이야,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제주에 온지 8년이 되었다. 나는 이제 고무줄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때 되면 꼭 미용실에 가서 커트를 한다. 이제 나는 제주에 사는 내 삶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인생이 깨나 멋지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낯섦과 설렘의 시기가 지나니 이 섬은 나에게 새로운 터전이 아니라, 오랫동안 살던 곳이 되었다. 제주라는 장소가 던져주었던 설렘을 이제는 나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설렘은 늘 유통기한이 짧은 게 문제다. 신입사원의 열정과 패기의 밑바탕이었던 설렘이 육체적 피로로 대체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연애도 마찬가지. 방금 헤어지고 들어왔는데도 또 두근두근. 그러다 일 년 후에는 사랑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들이 더 많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이제는 설레는 일에 대한 기대나 욕심이 없다. 언제나 짧게 끝나고 만다는 걸 알기에 뭘 굳이 설레는 일을 찾을 필요가 있나, 라는 마음이랄까. 사실은 아무리 고민해보아도 모든 것은 먹고 사는 일로 귀결되더라, 라는 때늦은 깨달음 때문이다.


글쓰기 역시 비슷하다. 첫 출간을 했을 때의 설렘은 잊을 수 없지만, 출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시장성 있는 주제를 발굴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그렇게 출간을 하게 되면 다음엔 경제적 의미를 기대한다. 또한, 첫 장편소설을 쓸 때는 장대하고 절절한 세기의 걸작이 될 이 이야기를 완성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완성하고 나니 이제는 정식으로 출간을 하고 싶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출간을 해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만큼 안 팔리면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는 팔려야 그 돈으로 먹고 살며 다음 작품을 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뭔가,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져버린 삶 같다. 서글프거나 안타깝진 않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순서로 변해가는 거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내가 다시 고무줄 바지를 입고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돌아다니는 날은 안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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