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약한 계절이 있다.
나에겐 여름이 그렇다.
여름만 되면
잔뜩 물먹은 솜처럼
축 처져서 늘어져 있는다.
그림도 그리기 싫고
글도 쓰기 싫고
사람 만나기도 귀찮다.
그래도 톡으로 수다 떠는 게 즐겁고
책 읽는 게 여전히 행복하다.
여름만 되면
잠을 10시간씩 자고
자주 가던 산책도 시큰둥해진다.
열심히 했던 근력운동도 자취를 감춘다.
반강제로라도 운동하기 위해
단체 PT를 끊어두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여름 햇살 때문에
새롭게 추가될 기미주근깨를
걱정하다가도
햇빛을 핑계로
좋아하는 모자를 종류별로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비 오듯 쏟아지는 땀 때문에
축축해서 불쾌하다가도
샤워 후 마시는 맥주 한 캔,
시티팝을 연상시키는 여름밤공기,
잔잔한 일본 영화가 떠오르는 여름의 낮온도,
요즘 읽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이
이 계절과 닮아 있어서 여름이 좋다.
여름이 힘겹지만
여름만이 줄 수 있는
이 계절의 낮과 밤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