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암울기에도 담담할 수 있는 용기

인생의 성수기 땐 자만을 조심하고 비수기 땐 너무 낙담하지 말자.

by 손나다

오랜만에 아는 지인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통 연락이 없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먼저 연락 잘 안 하는 편) 그간 힘든 일들을 한 차례 겪은 듯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일단락돼서 그동안의 근황 보고 겸 안부를 주고받고자 연락해 왔단다. 그 언니도 나와 비슷하다. 정말 힘들 때는 주변에 연락하지 않고 혼자 감내한다. 지나고 나서야 아무렇지 않은 듯 연락해 오는 거다.



주말부부인 내가 힘든 걸 징징거리지 못할 만큼, 그 언니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누구보다 욕심도 많고 자기 계발에도 열심이었는데, 아이를 위해 일도 그만두고 자기 계발도 내려놓았다고. 남편은 주기적으로 해외 장기출장을 가고, 귀국 일정은 점점 미뤄져서, 몸도 정신도 지친 상태라고 했다. 양가 어른들 누구에게도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없고, 기댈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아빠와 장기간 떨어져서인지 첫째는 불안 증세를 보이고 학교가길 거부한다고 했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 나는 정말 상투적이지만 '앞으로 좋아질 일만 남았다'는 뻔한 위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 던지는 위로이기도 하다. 나만 고여있고 멈춰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불안하고 답답할 때, 지금의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리란 걸 믿기에 크게 낙담하지 않는다. 인생엔 행복과 불행의 총량이 있어서, 항상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힘든 일을 겪는 사람이라고 항상 불행한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좋은 일만 가득할 때를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행복의 운을 다 써서 언제라도 고꾸라질 때를 대비해야 하니까. 마찬가지로, 지금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 지금의 상황이 언젠가는 끝나고 좋은 시기가 오리라는 믿음으로 버텨내야 한다. 영원한 건 없단 걸 믿기에 좀 더 기운을 낼 수 있다.



내 말을 조용히 듣던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너 남편이 이직 준비하는 일 년 반 동안 어떻게 그렇게 담담할 수 있었어? 나라면 불안해 미쳤을 거야. 너는 내 주변 사람들 중 최고로 긍정적인 사람이야. 어떻게 그렇게 암울한 상황에서도 초긍정적일 수가 있니?"



실제로 나는 남편이 희망퇴직하고 싶다길래 그러라고 했다. 밤낮없이 일하는 건 보통이고, 바쁠 땐 새벽까지 본인을 갈아 넣으며 일했는데,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더 이상 못하겠다고 했다. 이직하고 싶다길래 그러라고 했다. 그 시기 동안 강사일을 했고, 남편이 아이들 육아를 적극 도와주었다. 주변에선 나보고 어떻게 그렇게 태평할 수 있냐며 신기해했다. 자기 같았으면 불안해서 남편을 그만두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더구나 일 년 반 동안 이직 준비한다고 노는 남편에게 어떻게 독촉도 안 하냐며.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불안해했다.



남편은 항상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을 한 번 해보라며 적극적으로 지지해줬고, 한 번도 반대한 적 없었다. 항상 무언가 해보겠다고 할 때마다 반대에 부딪쳤던 학창 시절을 보냈기에, 나의 선택에 확신이 없었고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다. 무언가 도전해 보지 않았으니 성과도 없었다. 그저 몸을 사리며 안전지향적인 길만을 걸어왔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항상 안정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와 응원으로 내가 하고픈 것들을 하나씩 해보고 도전하기 시작했다. 꼭 뛰어난 성과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작은 시도들이 쌓여 더 큰 시도를 할 동력을 가져다 줄 거라고 믿는다.



남편에게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들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나는 남편이 처자식을 벌여 먹이기 위해 자신을 깎아가며 과도하게 희생하는 걸 원치 않는다. 어떻게든 돈은 벌면 된다. 남편의 상황이 영원하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담담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한평생 쉬지도 못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남자들이 측은했다. 여자들은 출산과 육아로 경력단절이 되기도 하지만 잠시 일에서 해방되어 쉬어갈 타이밍이라도 있다. 하지만 남자들은 항상 일하고 있는 게 당연시된다. 대학생 때, 학기 중에도 밤새서 과제를 하고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건 쉴 수 있는 방학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직장인이 된 남자들은 평생 방학도 없이 정년 때까지 일한다. (기다려봐,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 남편.)



또 한편으론, 내가 달달 볶고 독촉한다고 당장 이직에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쉴 수 있을 때 푹 쉬게 내버려두자 주의였다. 다들 내가 너무 태평한 성격이라고 하는데, 불안해하며 달달 볶아봤자 별로 달라지는 게 없는데 왜 그런 일로 서로를 피곤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동안 안 좋은 일을 겪은 에피소드를 언니와 공유했기에, 언니는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내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사실 내가 겪은 일들은 치명적으로 불행한 편도 아니다. 집집마다 들여다보면 이 정도 불행을 겪지 않은 집은 하나도 없다. 다들 저마다의 슬픔을 안고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간다. 그러니 조그마한 불운을 겪었다고 필요 이상으로 낙담할 필요는 없다. 나 정도면 그냥 액땜한 정도일까. 물론 나도 항상 긍정적인 건 아니다. 우울해하며 땅 파고 들어가는 시기도 있지만 길어도 한 달 이내로 빠져나온다. 내가 긍정적이게 보이는 이유는, 낙담의 시기에 지인들과 연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찌질한 모습,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그렇잖아도 각자 힘든 현생에 나까지 괴로움을 보태고 싶지 않다. 그러니 자연히 상태 좋은 시기에 기분 좋은 연락을 주고받게 되고 지인들 입장에서는 내가 항상 초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거다.



"언니, 원래 대운이 오기 전에 갑자기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고, 안 좋은 일들을 연달아 겪고, 인간관계가 정리된대요. 안 좋은 시기에도 지나치게 낙담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의 이 상황이 계속 가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영원한 하락장은 없듯, 바닥을 찍으면 상승장이 반드시 올 거예요. (주식도 안 하면서 주식하는 언니가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어 얘기했다)



지금의 답답하고 고여있는 듯한 시기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인생엔 다 때가 있고, 아직 그때가 오지 않았다는 걸 알고 기다리고 준비할 뿐이에요. 거대한 운명의 파도에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나는 언젠가 필연적으로 잘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아요.



아, 물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며 상황이 바뀌기만을 바라는 대책 없는 긍정주의는 경계해야겠지만요."



나 자신이 잘될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으면 불안하지 않을 수 있다. 아이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지 말고, 지금은 아이가 아프니 아이에게 집중하되 아이가 안정을 찾으면 언니의 인생을 다시 찾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 보라고 했다. 나는 엄마의 인생은 하나도 없고 모든 걸 아이에게 올인하고 싶지 않다. 나의 꿈은 아이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이루면 된다. 아이는 자기에게 맞는 길을 스스로 찾아갈 것이다. 언니 또한 이루고픈 꿈들이 있고 잘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와중에도 '자아'를 잊지 않고 항상 들여다보며, 발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다. 천 번 실패해도 한 번만 성공하면 된다. 사람들은 그 한 번의 성공만 기억할 테니 말이다. 나보다 나이도 많은 언니에게 조언을 너무 많이 한 나 자신이 문득 우스워진다.



이야기가 딴 데로 샌 것 같은데, 지금 안 좋은 시기를 겪고 있는 분들께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거듭 얘기해주고 싶다. 나 또한 여유 부릴 형편은 아니지만 너무 불안에 함몰되어 형편없는 선택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영원한 건 없다. 결국 다 지나간다. 그냥 그때그때 소소한 행복을 즐기며 잘 준비해 나가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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