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다 그게 그거라고 느껴질 때
유럽에서 도시들을 여행 다닐 때마다 늘 한, 두 군데의 미술관을 들렀다. 대학생 때는 포스트 모더니즘 수업에서 들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인상에 깊이 남아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들르기도 했고, 파리를 처음 여행 갔을 때는 필수 관광 명소로 루브르를 방문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먹고 마시고 걷는 것 외에 특별한 활동이 없는 도시 관광의 빈 시간들을 채우기 위해 그 도시의 미술관을 알아보곤 했다.
리스본의 타일 박물관도 그 중에 하나였다. 일주일 동안 포르토와 리스본을 다녀오는 꽤 여유로운 일정이기도 했고, 그 날은 마침 같이 갔던 4명의 친구들 중 3명이 면접이 생겨서 나머지 1명의 친구와 그럼 우리 뭐하지? 미술관이나 가볼까? 하며 다녀온 곳이었다.
르네상스와 인상주의 화풍이 유럽 미술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포르투갈의 타일 미술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훨씬 자유로웠다. 정사각형의 타일에 파란색 물감이 전부인 타일 미술은 단순히 생각하면 보통의 캔버스 그림보다 표현이 훨씬 제한적인 것 같은데 미술의 스타일이나 소재의 사용 방식이 무척 다양했다. 어떤 타일에는 사람들의 표정이 캐리커쳐처럼 익살스럽기도 했고, 타일의 테두리를 모양을 내어 다듬어 작품의 프레임을 만들기도 했다. 조금만 더 북쪽으로 가면 미술의 형태나 주제가 굉장히 한정적이었던 중세와 근대 시대 때 작품들도 ‘주류’ 미술과는 전혀 다른 화풍이 나타나는 게 흥미로웠다. 타일 미술의 변천사를 담고 있는 박물관의 끝에는 현대의 타일 작품들을 볼 수 있었는데 전통 미술이 사라지지 않고, 시대에 맞추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도 고무적이었다.
박물관을 다녀온 뒤에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걷다가 좁은 골목과 계단참이 있는 햇볕 좋은 식당 테라스에 앉아 와인 한 잔씩을 마셨다. 걸어 오간 길과 날씨가 모두 소박하고 따뜻해 그 날 갔던 모든 장소들이 조금 더 예쁘고 그립게 기억되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리스본에서 모두가 같은 것에 감동을 받고 오는 건 아니었다. 프랑스의 철도 설계 회사 시스트라에서 일할 때, 포르투갈 여인과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는 에르베 아저씨가 있었다. 에르베 아저씨는 우리 프로젝트의 기술 고문으로, 담당하고 있는 전동차 모델의 기술적 한계나 이점, 개선 방향 등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계셨다. 현업에서 물러나 주 3회만 근무를 했는데 일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크셔서 철도 기술 이야기를 시작하면 좀처럼 멈추지 않으셨다. 종종 클라이언트와 미팅에서는 프로젝트 리더가 라디오 생방송에서 시간이 부족할 때처럼 “네, 그럼 여기까지 잘 들었고요.” 하고 듣는 이가 민망하다 싶게 끊어낼 때까지 절대 말을 멈추지 않는 그야말로 “철도 오타쿠”였다.
아저씨는 부인과 사별을 하고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전 사모님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보이는 울적하고 슬픈 표정과 여자 친구 이야기를 물어볼 때면 나오는 수줍고 행복한 미소가 모두 진실해서 정말 사후 세계가 있어 한 명만을 영원한 동반자로 선택해야 한다면 에르베 아저씨가 참 곤란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저씨가 리스본에서 처음 여자 친구를 만나던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얼마 전에 리스본에 다녀왔다고 이야기하니, 에르베 아저씨는 바로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아저씨가 보여준 사진은 바로 리스본의 상징과도 같은 노란색 28번 트램. 보긴 했는데, 타지는 못했다고 말하려는 순간. 아저씨는 또 다시 철도 이야기 보따리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100년 전에 이 정도 경사를 올라가는 트램을 만들었다는 게 정말 대단하지 않나? 이 경사가 어느 정도나 될 것 같나? 내가 이 땅의 수평을 맞추어서 사진을 찍어서 대략 계산해봤는데 경사도가 XX퍼밀은 되는 것 같단 말이지. (안타깝게도 아저씨가 말한 수치는 듣는 동시에 잊어버리고 말았다.) 요새도 이 정도 경사로에는 트램 짓는 걸 피하는 데 말이야.”
그리고 아저씨의 이야기는 이 정도 경사로에 대중 교통을 짓기 위해 필요한 기술은 무엇인지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블로그에서 리스본 트램 사진을 볼 때도, 그 오르막길을 아슬아슬 올라가는 모습을 직접 본 때도 나는 이 오래된 트램의 추진력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그러니 경사도를 직접 계산해보는 행동력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렇지만 나에겐 일 말의 궁금증도 자아내지 않았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한 도시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는 건 상당히 인상깊은 일이었다. 내가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세상의 일부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으며, 아저씨의 열정과 행동력은 나도 내가 하는, 하게 될 일을 저만큼의 애정으로 대하고 있나 하는 질문을 해보게 만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여행 에세이 중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라는 책이 있다. 라오스를 여행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듣고, 한 베트남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한다. 거기나 여기나 비슷한데 굳이 라오스까지? 라는 뉘앙스로 했던 말을 무라카미 하루키가 기억하고 책의 제목과 내용으로 쓴 것이다. 나도 미리 계획해 놓은 여행이 귀찮아질때면 XXX에 대체 뭐가 있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유럽에 온 외국인답게 3-4일의 연휴라도 주어지면 마치 또 하나의 과제처럼 근방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가기 하루 이틀 전에 갑자기 여행가는 게 다 귀찮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유럽 도시에서 볼 게 다 거기서 거기인데 내가 굳이 또 돈 쓰고 시간 쓰고 여행을 가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총체적인 만족도와 상관없이 다른 나라, 다른 도시, 다른 여행은 늘 나에게 새로운 감정과 생각을 남긴다. 나에게 리스본은 자신들의 역사와 재치를 타일이라는 매체에 표현했다는 것이 특별했고, 또 타인의 리스본 여행은 나에게 자기 일을 사랑하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어 특별했다. 이 글을 읽은 뒤 누군가 리스본에 가게 된다면, 타일 박물관에는 실망할 지 몰라도 리스본에는 -나와는 또 다른 이유로- 큰 매력을 느끼고 올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