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목차가 책이 팔리는 데 도움이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은 ‘아니다’였고, ‘아니다’이다. 왜냐하면 나는 책을 사기 전에 목차를 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읽을 때도 목차를 읽지 않는다. 머리말이나 추천사 같은 건 그냥 넘기기에 죄책감이 들어서 읽을 때도 있지만, 목차는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나의 습성을 인류 표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 사람에게 목차는 지나치는 페이지라고 생각한다.
함께 글을 쓴 친구들도 나와 의견이 비슷했는지, 우리의 목차 정하기 회의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제목을 정하기 위한 회의는 3번에 나누어 이루어졌고, 매번 피 튀기는 논쟁이 있었다. 그렇지만 목차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부드러웠고 타인의 의견에 너그러웠다(거의 모든 의견이 ‘그래, 좋아!’로 받아들여졌다).
가장 큰 주안점은 서로 다른 성격의 주제와 글을 되도록 고르게 분포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여성이나 환경처럼 좀 더 진지한 논의가 많은 주제가 있었고, 시간이나 여행처럼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이 주인 주제가 있었기 때문에 되도록 비슷한 성격의 주제가 앞뒤로 배치되지 않도록 했다. 한 주제 안에서도 정보 제공 위주의 글과 감정과 느낌을 담은 글은 되도록 퐁당퐁당으로 배치했다. 글쓴이마다 다른 각자의 개성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동시에 비슷한 류의 글이 이어질 경우 느껴질 수 있는 지루함을 방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공을 들인 것이 마지막 주제와 마지막 글이었다. 이 책이 남기는 여운은 마지막 글로 결정될 것이므로, 각자의 생과 직업에 대한 가장 진솔한 생각을 적은 것을 마지막 글로 배치했다. 결론보다는 결심이 담겨있는 글이었다.
별 탈 없이 다 함께 목차를 정하고, 두세 번째 검수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음을 얻는 명탐정 소년 코난처럼, 나에게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최근에 읽은 책들의 ‘첫 번째 글’에 관한 것이었다.
1) 안 느끼한 산문집: 6회 브런치 대상을 받은 수필집인데, 방송 작가인 책의 저자가 성인 방송의 작가를 맡았던 에피소드가 첫 글이다. 제목도 ‘혼란의 여름: 성인방송 작가’인데, 일단 누구라도 궁금해질 만큼 자극적인 제목이다.
2) 유령의 마음으로: 임선우 작가의 단편 소설집이다. 책의 제목인 ‘유령의 마음으로’가 책의 첫 번째 글이다. 생각해 보면 단편집이나 수상 문학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늘 책의 첫 작품으로 나온다.
3) 꺾인 꿈을 기억해: 파리의 아는 분께 선물 받은 수필집이다. 파리에서 유학 생활과 한불 문화 교류 프로젝트들에 쓴 글인데, 이 책은 스트레스성 탈모로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나가 모든 걸 포기하고 한국에 중도 귀국하는 강렬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런가 하면,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유튜브 “핑계고” 역시 주요장면 미리보기로 한 회를 시작한다. 사실, 나는 스포일러를 당하고 싶지 않아서 미리보기는 넘기지만, 어쨌든 초반에 사람들의 마음을 빠르게 끌 수 있는 소재를 두는 것이 요즘 콘텐츠들의 공통점으로 보였다. 기승전결의 구조를 따르기보다는, 강한 인상과 호기심을 주는 소재를 전진 배치해 사람들의 이탈을 막는 것이다.
좀 더 강한 인상을 주는 걸로 시작해 보자는 제안이 받아들여져 우리의 첫 주제는 ‘여성’으로, 첫번째 글은 ‘생리 조크’로 바뀌었다. 물론 나는 출판의 경험도 없고 두 가지 목차에 대해서 비교 테스트를 한 것도 아니므로, 이 변동이 이전 목차와 다른 영향력을 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사실 진부하리만큼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첫인상이 뇌에 각인되는 정도가 하도 강렬해, 첫인상을 바꾸려면 60번을 만나야 한다고도 한다. 우리 책에는 35개의 에세이가 담겨있으니 아마도 이 책을 60번 이상 끊어 읽는 사람은 드물 테고, 그렇다면 대부분 사람에게 이 책의 첫인상은 책이 끝낼 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글을 마치며, 다시 '더 좋은 목차'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목차는 책이 팔리는 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책을 끝까지 읽어 내려가는 데에는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의 첫인상은 독자들이 책을 선택하는 데 있어 목차보다 더 중요한 요소라는 확신이 든다. 이북의 미리보기를 확인하다가 ‘생리 조크’라는 제목에 호기심을 느끼고 책을 넘겨볼 독자들이 생기기를 기대해 본다.
이 브런치북은 5명의 친구들이 함께 5개월간
이북 <유튜브도 좋지만 가끔은 생각하며 살고 싶어>를 만든 여정을 담았습니다.
이북과 브런치북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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