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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율 Aug 01. 2023

상상력이 인생의 스케일을 정한다

'무모함'이라는 족쇄에서 자유로운 뇌가 부를 끌어온다


"잠깐 카페 좀 다녀올까요? 할 얘기가 있어서요"

대표님이 내 자리로 오시더니 말씀하셨다.


"네 좋아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매일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던 대표님과 내가 무게를 잡고 이야기한다는 건, 그동안 미뤄왔던 시나리오 저작권에 대한 이야기가 남았기 때문이다.


"서율씨, 저작권에 대한 퍼센테이지는 생각해 보셨나요?"

"제가 시나리오 작가로 처음 일해보니 기준을 잘 몰라서 어렵네요"

"저도 이렇게 계약해 본 적이 없어서 어려워요"


시나리오는 창작물이기 때문에 저작권이 정말 중요하다. 내가 쓰는 시나리오가 훗날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될 상황을 미리 상상하며 써야 하는 게 저작권 계약서였다. 대표님과 나는 각자 생각해 온 기준을 이야기했고 다행히 적당한 비율로 협상이 잘 이루어졌다.


사실 저작권 계약서를 먼저 제안한 쪽은 나였다. 매일같이 머리를 짜내어 창작물을 만드는데 회사가 운영하는 채널에만 국한된다는 게 너무 아까웠다.  


"대표님, 제가 쓰는 시나리오를 다른 플랫폼으로도 공유하고 싶어요. 여러 경로의 기회를 열어둘수록 더 영혼을 갈아서 시나리오를 쓸 것 같거든요 저한테도 유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세요"


다행히 대표님께서는 내 의견을 수용해 주셨고 이로써 월급을 받으며 쓰던 모든 시나리오를 다른 분야로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대표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씀하셨다.

"다른 직원들과 다르게 서율씨는 너무 큰 꿈을 가지고 있어요"

"그럼 시나리오에 진심이니까 더 좋지 않나요?"

"결과물이 좋으니 좋긴 한데.. 잘 되셔서 훌쩍 떠나실까 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네요"

"에이~ 대표님! 저 의리 있는 사람이에요 바로 홀랑 안 떠나요 좋은 작가 구할 때까지 외주로 일할게요"

"그래도 완전 프리랜서보다는 고정 수익이 있는 게 낫지 않나요?"

"근데 저 아직 아무것도 아닌데 지금 대화가 너무 김칫국 마시는 것 같아서 웃기네요 하하"

"아니에요 서율씨는 앞으로 충분히 잘 될 거라고 생각해요"


미래의 잘 된 내 모습을 상상하며 나누는 대화, 그 상상을 문서화시킨 계약서라니..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도 마음이 벅찼다.




이런 대화가 가능한 건 매번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대표님의 영향이 컸다. 사실 나와 대표님은 오래전부터 특이한 경로로 인연이 있었는데 내가 몇 년 동안 매일 써오던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대표님이 만든 이모티콘이었다.


"와.. 저 그거 맨날 썼는데! 대표님이 만든 이모티콘이라고요?"

"네 제가 만든 거예요 하하"


대충 그린 듯한 병맛컨셉 이모티콘 하나로 어린 나이부터 앉은자리에서 연수입 3억씩 벌어들였던 대표님이었다.


"서율씨가 이번에 쓴 [좀비게임] 시나리오를 읽고 실제 서바이벌 게임으로도 만들어보고 싶더라고요. 파주 영어마을 같은 곳에서 1박 2일로 숙박하면서 밤에 좀비들이 쳐들어오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게임인 거죠. 너무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일반적인 사람 같으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겠나 싶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진심을 담아 하시는 분이 나보다 어린 나이에 직원 열한 명에게 매달 월급을 지급하고 음악사업에도 여기저기 투자하고 계신다.


대표님은 100% 자수성가형 사업가인데 원래 직업은 애니메이터였다. 그는 애니메이터들에게 열악한 대우를 하는 애니메이션 시장에 대해 항상 의문을 품어왔다고 한다.


다른 애니메이터들은 당연히 박봉인 직업군이라고 생각할 때

대표님은 "애니메이터는 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지?" 라는 의문을 품었고 카카오톡 이모티콘 시장이 블루오션일 때 뛰어들어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이모티콘으로 사업 자금이 생기자 대표님은 곧바로 다음 사업을 추진했는데 본인이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수익을 올리겠다고 할 때 모두들 비웃었지만 현재 16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내 주변의 사업가들은 MBTI의 T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대표님은 뼛속까지 F의 성향을 가진 조금 다른 결의 사업가이다. 그는 치열하게 손익을 분석하는 대신 뛰어난 직관과 상상력으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무모한 도전에 투자해 왔다.


나는 대표님이 무모한 도전에 인생을 걸 수 있는 용기가 엄청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에서 '안전의 욕구'를 거스르는 행위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해낼 수 없는 능력이다.


"그러다 망해!"

"돈 벌면 무조건 저축해야지 무슨 사업이야"   

"니가 무슨 100만 유튜버야"


사람들의 만류에도 자신의 소신을 꺾지 않고 관심 있는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대표님은 뜬구름 같은 좀비게임 사업을 구상하며 한껏 들떠있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 순수한 열정이 있었기에 대표님은 안전의 욕구를 이겨내고 부를 끌어올 수 있었다.


나 또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안전의 욕구에 목메던 월급쟁이였는데 주변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확실히 부에 가까워지는 뇌구조가 따로 있구나 라는 걸 깨달으면서 안전함에 기대려는 본능을 인위적으로라도 컨트롤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당장 통장으로 들어오는 월급의 액수에 연연하지 않고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나만의 독자적인 파이프라인을 설계하고자 하는데 이 원리를 깨닫고 나면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가 훨씬 넓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좋아하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월급 받는 건 정말 행운이지" 이게 기존의 시야에서 바라본 인생이었다면


현재는 이렇게 인생의 시야가 넓어졌다.

"지금 쓰는 시나리오를 다른 플랫폼을 이용해 2차 영상 제작이 들어오게끔 홍보하고 대표님께 일부 수익을 나누는 구조로 만들어야겠어. 매주 쓰는 시나리오에서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걸 선별해서 영화나 드라마 시나리오 공모전에 제출도 해보고, 추리소설로 변환해서 출판사에 투고도 해보고, 인스타그램에도 올려보고, 네이버 웹소설로 써보기도 하고, 작화가 들어가면 더 좋을 시나리오는 회사 내에 실력 좋은 애니메이터랑 협업해서 웹툰으로 제작해 볼까?"


웃긴 건 월급쟁이 주제에 대표님께 허락받고 사내 애니메이터를 사비로 고용해 한글 자막 작업에 들어갔다. 아직 한국 시장에 계획이 없는 대표님의 방향에 순응하지 않고 저작권을 나누는 조건으로 나의 시나리오에 한글 자막을 붙여 한국인들에게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월급쟁이가 월급쟁이를 고용한 게 웃기지만 필라테스할 돈대신 쓴다고 생각하고 그 시간에 글 쓰는데 전념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 모든 활동들은 될지도 안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한 투자인데 "무모하다"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모두 부질 없어진다.


나는 "무모하다" 라는 생각이 가장 무서운 생각이라는 걸 안다. 충분히 날 수 있는 자신을 스스로 새장에 가두는 덫이니까.

비록 삼십 중반의 나이에 뒤늦게 깨달았지만, 평생을 깨닫지 못하고 작은 새장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서율씨는 최종 꿈이 뭐예요?"

"저는 제 시나리오가 넷플릭스로 제작되는 거요"

"그거 작가 원고료는 얼마 안 하지 않아요? 저는 영화 만들고 싶은데 그때 같이 일해요"

"네에??? 영화를 직접 만들겠다고요..?"

"네~ 영화 부산행 감독이 원래 애니메이션 감독이었잖아요"

"와.. 확실히 상상력의 스케일이 남다르시네요.."


나는 아직 대표님의 스케일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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