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서율 May 31. 2023

인생은 고장나있는게 정상이다

우주의 불완전함 덕분에 당신도 나도 존재한다


“언니, 내 인생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같아. 고장난 상태로 앞으로 가긴 가잖아”

슬기는 진지하게 하소연하는데 너무 찰떡같은 비유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내 인생도 그랬으니까


일이 잘 풀리면 연애가 뻑나고, 연애가 잘 풀리면 또 일이 뻑나고, 웬일로 둘 다 안정되면 건강에서 뻑나고

마치 두더지 게임처럼 자꾸만 돌아가면서 뻑나서 쉴 새 없이 망치로 내리쳐야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내리치다 보면 갑자기 삶이 너무 피로해진다. 모든 게 고장나지 않은 완전한 상태로 살 순 없는 걸까?


사람은 완벽하게 행복한 상태가 되면 불안해진다. 얼마 안 가 무언가 뻑날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건 그동안의 무수한 경험들이 보내는 데이터다.


안정적으로 탄탄한 삶을 바라는 사람들의 희망과는 다르게, 시대와 상황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우리는 또다시 불완전한 상태로 내몰린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영끌족들이 흥할 줄 알았는데 집값이 떨어지고 금리가 오르면서 한순간에 위기를 맞이했고, 코로나 이후로 비대면 시대가 계속해서 이어질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빠른 일상의 복귀로 호황을 누리던 배달업계가 한순간에 직격탄을 맞았다.


나의 삶 또한 불안정하고 고단했다. 매년 이슈가 생기면 그걸 해결하기 위해 망치질을 해왔는데 두더지의 머리는 끊임없이 올라와 이 빌어먹을 게임은 도통 끝나질 않는다. 언제까지 망치질을 해야 게임이 끝나는 걸까?




“우주의 기본 법칙 중 하나는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불완전함 덕분에 당신도 나도 존재한다”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이런 말을 했다. 애초부터 불완전한 상태가 자연의 섭리라는 이야기다.


그동안 인생에서 나사 빠진 부분만을 들여다보며 고치느라 온 신경이 쏠려있었는데 그게 정상적인 상태였다니 힘 빠지는 허망한 소리다.


나는 인생이 내 뜻대로 고쳐지지 않을 때마다 론다 번의 ‘시크릿’을 열심히 읽곤 했다. 상상만 하면 원하는 걸 모두 끌어당긴다니. 절망스러운 인생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들리는 이론이었다. 시크릿의 이론대로 시간이 날 때마다 완벽한 인생을 상상했는데 나의 부푼 희망에 자꾸 찬물을 끼얹은 건 법륜스님이었다.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법륜스님의 말씀을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난 2년간 나의 인생은 대지진을 겪으며 직업도 사상도 삶의 방향까지도 완전히 바뀌었다.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며 덕분에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었는데, 시크릿의 이론대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10에서 4정도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10에서 4정도 이뤄졌다는 건 훗날 돌이켜 생각해 보았을 때 안 사실이었고, 매일매일 피부로 체감하는 인생은 "세상 모든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법륜스님의 말씀이 옳았다.


이 두더지 게임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최선의 방법은 두더지 머리가 삐죽 튀어나와 있는 불완전한 상태가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걸 받아들이는 거다. 그 불편한 모양새를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불완전한 삶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도 너무나 어려운 수행이니까


슬기는 올해 연애와 결혼 준비가 순탄해지면서 건강이 뻑났고, 나는 일과 커리어가 순탄해지면서 연애와 결혼이 뻑났다.


슬기의 명언대로 인생은 고장난 상태로 전진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다. 우리는 나사가 한두 개씩 빠진 이 불편한 모양새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나가기로 했다.


조금 삐걱거리고 불안하지만,

분명 힘차게 앞으로 전진하고 있으니까.






이전 07화 내겐 부끄러운 MBTI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