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서율 Sep 05. 2023

촉이 좋아야 삶이 순조롭다

경험의 오답노트가 남은 삶을 이끄는 나침반이다. 


"저는 촉이 오면 그냥 넘겨 버릴 때가 많은데 서율씨는 자신의 촉을 믿고 따르네요?" 


며칠 전 지인한테 들은 이야기다. 생각해 보니 나는 내 촉을 상당히 신뢰하면서 살고 있었다. 한해 한해 촉의 정확도가 높아지니 신뢰를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친한 동생이 회사 동료와 갈등을 겪었는데 같은 숙소에서 사는 사람이라 상황이 불편해졌다.

다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화해를 하라고 했지만 나 혼자 절대로 화해하지 말라고 말렸다. 분명 한 번 더 뒷통수를 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생은 상황이 불편해지는 게 싫어 동료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몇 달간 잘 지내나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더 심한 방법으로 뒤통수를 맞아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역시 네 말이 맞았어" 나는 이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럼 내 판단력이 정확도가 높은 편이라는 건데, 사실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기보다는 촉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은 사색의 결과물이라 촛농을 녹여가며 빛을 내는 촛불 같다면, 촉은 센서등 같이 순간 반짝 켜졌다가 사라지는 즉각적인 감각인데. 사람들은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나의 감각을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단 한 번 켜진 센서등이라도 분명 무언가가 지나갔기 때문에 켜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촉이라는 감각을 가지고 있는데 센서등이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가에 따라 촉이 좋은 사람과 안 좋은 사람으로 나뉜다. 손을 뻗어 휘휘 내저어야 켜지는 센서등도 있고, 등 아래를 피해서 지나갔는데도 켜지는 센서등도 있다.


살다 보면 촉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들을 자주 겪는다. 어떤 회사로 이직해야 하는지, 어떤 배우자를 골라야 하는지, 저 사람과 동업을 해도 괜찮을지, 어느 곳에 투자해야 할지.. 객관적인 판단을 해도 변수는 언제든지 나타나기 때문에 촉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순간의 선택이 나비효과처럼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경우가 많은데 촉이 좋으면 뭐든 실패할 확률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에 순조로운 삶을 사는데 유리해진다.




촉은 타고난 거라고 하지만, 나는 후천적으로 촉이 좋아진 케이스인데.

이제부터 촉이 좋아지는 방법 세 가지를 소개하겠다.


1. 경험의 오답노트가 두껍고 정밀할수록 촉이 좋다

실패를 겪은 사람들은 두 가지의 부류로 나뉘게 되는데. 실패를 원망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부류가 있고, 실패의 원인에 대해 냉정하게 분석해 보는 사람이 있다.

나는 철저하게 두 번째 부류이다. 하다못해 실연을 당해도 상대를 원망하기 전에 나의 어떤 단점 때문에 연애에 실패했는지 분석해 본다.


자신의 실패에 대해 분석하지 않는 건, 생고생해서 얻은 경험치를 오답노트에 새기지 않고 흘려버리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들은 똑같은 실패를 계속 반복한다. 오답노트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으니 가이드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현명함은 나이와 전혀 관련이 없다. 오랜 세월 많은 실패를 겪어도 오답노트가 알량한 사람이 있고 짧은 세월 적은 실패를 겪어도 오답노트가 빼곡히 적혀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2. 팩트를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촉이 위험요소를 감지했는데 애써 외면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이런 사람들은 팩트를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는 용기가 없어서다.


진실은 언제나 불편하게 다가온다. 오죽하면 팩트 폭행이라는 단어가 있을까. 나의 전 재산을 걸고 시작한 사업이 전망이 없어졌다는 진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 몰래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진실, 내가 믿고 신뢰했던 친구가 내 뒷통수를 치고 있다는 진실은 그 누구도 선뜻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거다.


그럴 때 사람들은 "설마 아닐 거야"를 시전 하며 애써 외면한다. 지금 당장 내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에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다. 그렇게 진실을 덮어두면 훗날 폭풍우는 더 크게 몰아친다. 연인에게 쎄한 느낌을 받았는데도 무시하고 결혼했다가 결혼에 실패하거나, 사업 파트너가 신뢰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해도 무심코 넘겼다가 크게 사기를 당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지진의 전조증상을 발견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댓가는 무방비 상태로 대지진을 맞아야 한다. 그래서 당장 진실을 마주 보는 게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용기 내서 들춰볼 수 있는 강한 멘탈을 키워야 한다.


나 또한 과거에 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는데 훗날 모조리 실패의 결과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최대한 맑은 눈으로 들여다보려 한다. 몸이 안 좋으면 결과가 두려워도 당장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고, 재능이 없는 분야는 마음 아프지만 깔끔하게 인정하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서고, 쎄한 촉이 오는 사람은 과거의 좋았던 기억을 잠시 배제하고 합리적인 의심으로 다시 재검토한다.


그 대상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예외는 없다. 연애도 남녀관계이기 이전에 인간관계기 때문에 상대의 본성과 싹수를 먼저 확인하고 나서 사랑해야 한다. 혹여나 그전에 사랑에 빠져버렸다고 해도 아니라고 판단이 서면 멈춰야 한다. 아닌 건 아닌 거다.


인생의 모든 결정은 머리가 가슴을 이겨야 한다.

나는 그동안 머리를 따른 결정에 대해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고난과 역경은 머리가 아닌 가슴을 따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3. 판단력을 흐리는 물타기를 견제해야 한다

오답노트가 두껍고 정밀해지면 촉이 오는 속도도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도도 높아진다. 그럼 뛰어난 기능의 센서등을 가질 수 있는데 남들은 모르고 지나치는 작은 단서에도 촉이 바짝 선다.

자신의 촉이 정확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게 된다. 남들의 의견보다 내 의견이 정답이었던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 촉을 가장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센서등이 예민해져도 중간에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물타기를 조심해야 한다. 분명 구린내가 나서 내 촉은 경고등이 켜졌는데 상대는 아니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다. 보통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과 표정을 보고는 내 촉이 잘못되었구나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내 촉을 무시하지 않고 한 번 더 검증 과정에 들어간다. 나의 센서등은 이유 없이 켜지지 않는다. 무언가가 지나갔기 때문에 켜진 거다. 나는 내가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으니 상대에게 해명해 보라는 기회를 준다. 그건 억울함을 호소하는 말이 아닌, 철저히 증거로 보이라는 이야기다.


만약 상대가 명확한 증거를 내민다면 내 촉이 틀린 걸 인정하고 사과하면 되고, 상대가 증거를 내밀지 못한다면 그 어떤 하소연을 해도 내 판단이 맞는 걸로 결론지으면 된다.

보통 내가 사과하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결국 초반에 켜진 경고등은 대부분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판단의 검증 프로세스가 생기면 인간관계든 비지니스든 인생의 모든 면에서 실패할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인생을 살면서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면

나의 오답노트부터 확인해 봐야 한다.


실패를 원망하는 사람과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질의 차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진다.


당신의 오답노트는 어느 정도로 두껍고 정밀한가?

그 오답노트가 당신의 남은 삶을 이끄는 나침반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