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내 인생에서 신분 상승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그러니까 이 매니저, 하루빨리 정신 똑바로 차리고 결혼할 사람을 찾아야 해 "
"사실 나는 와이프를 그렇게 사랑하진 않았어 그냥 때가 되니 부모님 권유로 결혼한 거지 하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아 조건이 맞으니 잘 살게 되더라고"
"남자나 여자나 똑같아 배우자가 내 신분 상승의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지"
오늘의 회식 자리에서의 주제는 결혼이었다. 사람들의 대화에서 '결혼'과 '배우자'라는 주어를 '사업'과 '사업 파트너'로 바꿔보면 문맥상 훨씬 더 자연스럽게 들릴 정도였다.
34살에 아직도 싱글인 나는 이 주제에서 첫 번째로 도마 위에 올랐다.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냐는 그들의 질문에 나는 '사랑'과 '존경'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질문에 어긋난 동문서답을 한 기분이었다.
나도 한때 그들처럼 결혼으로 신분 상승을 꿈꾼 적이 있었다.
스물일곱 살에 만났던 남자 친구는 규모가 큰 중견기업 사장의 아들이었다. 그는 고작 서른한 살에 강남의 60억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그의 소유로 된 외제차가 두 대 나 있었다.
그는 나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꽃을 사들고 회사 앞에서 자주 기다렸다. 나에게는 그가 백마 탄 왕자님으로 보였다.
신데렐라의 결말처럼 왕자님과의 결혼을 꿈꿨지만 그 또한 결혼으로 더 높은 신분 상승을 꿈꾸는 또 다른 신데렐라였다.
수많은 커플들은 사랑을 담아 서로를 마주 보고 있지만 결혼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었다.
내 주변 남사친들은 이렇게들 이야기한다.
"예쁘지 않은 여자면 눈길도 안 줬지만 이젠 결혼해야 하니 외모는 내려놓기로 했어 스킨십만 가능하면 조건 맞춰 결혼해야지"
"우리 어머니 몸도 안 좋으신데 결혼 문제로 속 썩이고 싶지 않아 뒷목 잡고 쓰러진다 생각하면 끔찍해 그냥 어느 정도 타협해야지"
"결혼할 사람 찾아야 하니까 이번에 여자 친구랑 헤어졌어 정말 사랑했는데 이젠 철없이 그만 놀고 결혼할 여자를 찾아야지"
"요즘은 처가에서 지원을 해줘야 개원이 가능하데 페이닥터 그만두고 개원하려면 여자 집안을 볼 수밖에 없어"
내 주변 여사친들도 이렇게들 이야기한다.
"그를 너무 사랑하지만 무능력해서 결혼할 엄두가 안 나.. 빨리 갈아타야 해! 소개팅 해 줄 사람 없어?"
"요즘 집값이 너무 올라서 집 없이 시작하면 대출 갚느라 평생을 고생할 거야 집이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
"이번에 사업가 소개받았다며? 무조건 진득하게 만나 사랑이 밥 먹여 주는 거 아니야 먹고사는 게 먼저지"
"남자나 여자나 똑같아 배우자가 내 신분 상승의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지"
회식에서 상사가 했던 말은 너무나 솔직하면서 뼈아픈 지금의 현실이다.
백마 탄 신데렐라와 헤어진 후 몇 번의 연애와 썸을 더 거쳤다. 연애를 하면서 나 자신을 알아갈수록 나는 사랑 없이는 절대 결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가슴 뛰는 사랑이 있어야 결혼이 가능하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마치 화려한 네온사인이 가득한 향락의 도시에서 나 혼자 어두운 밤하늘로 둥둥 떠오르는 느낌이다.
속세와 멀어질수록 밤하늘은 어둡고 춥지만 어느 날 나와 같이 하늘로 떠오른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싶다. 그곳은 밝은 태양이 따뜻하게 비추고 포근한 구름 둘러싸인 우리만의 집을 지어 둘만의 세상 속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