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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창조하는 삶

2021년이 나에게 주는 의미

by 손서율


길고도 치열했던 2021년이 끝났다.

케이크 위에 녹아들어 가는 2022년 숫자초를 불어 끄며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았다.


어렵게 이직을 해냈고, 작가가 되어 나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집필하게 되었고, 치열하게 발로 뛰어다니며 좋은 집을 구해 이사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2021년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창조하는 삶의 반열로 들어선 시점"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창조하는 삶"은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삶"과 반대되는 의미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낸 그림들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삶이다.


그동안 내가 그런 삶을 살아왔다는 걸 연말부터 체감하기 시작했다.




올해 1월까지만 해도 나는 우수수 떨어지는 탈락 소식을 들으며 노트북 앞에 종일 앉아서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이 코로나 시국에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취업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결국 지금의 나는 새로운 직장에서 완벽하게 적응하여 오래전부터 있었던 인간 마냥 편안하게 근무하고 있다.


올해 3월까지만 해도 브런치 작가를 도전하며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나를 브런치에서 받아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두 번의 도전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유명인도 아닌 내 이야기를 읽어 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라는 의구심으로 글을 써왔지만 구독자가 조금씩 오르며 귀한 시간을 내서 내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제법 생겨났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몇 군데의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먼저 해주시기도 했다. 정말 내가 그려왔던 그림이 서서히 현실화되어가고 있다.


올해 8월까지만 해도 부동산 앱을 들여다보며 숨 막히는 전셋값과 마음에 들지도 않는 집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는데 수없이 많은 발걸음과 허탕 속에서 기적같이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만나 계약하였고 지금 그 집 거실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흙수저 조차 없이 혼자서 삶을 꾸려나가면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지금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오롯이 내 힘으로 창조해 내었다는 게 신기하고 애정이 간다.


나의 삶을 스스로 창조하기 시작하면 인생이 정말 재미있어진다.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삶"과 "창조하는 삶"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수확하여 와인을 만들어 마시는 게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삶이라면


창조하는 삶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포도나무를 보며 이곳에 들어선 광활한 포도밭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그 밭을 실제로 일구어 와이너리를 세우고 내가 생각했던 브랜드 네이밍을 만들어 와이너리의 이름을 짓고 직접 와인병을 고르고 그 와인병에 내가 디자인한 라벨지를 붙이고 유통 경로를 구상하다 보면 어느새 나에겐 와인이 담긴 하나의 오크통이 아닌 광활한 포도밭과, 와이너리, 내가 만든 브랜드, 그리고 그 와인을 사랑하는 소비자들이 생긴다.


주어진 삶과 창조하는 삶은 당장은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지만 결과물의 차이는 이렇게도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을 현실화시키려면 반드시 꼭 필요한 요소가 있다. 그건 "내가 지금 하는 짓이 뻘짓이 아니라는 믿음"이다.


수없이 많은 허탕 속에서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결과물 속에서도 "지금 내가 하는 짓은 뻘짓이 아니다" "이 뻘짓들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빵 터지는 날이 올 거다"라는 믿음을 절대 잃지 않아야 한다.


마치 어린 시절 체육대회에서 했던 박터지기 게임 같다. 처음엔 모래주머니를 아무리 세게 던져도 박은 열릴 미동도 없지만 꾸준하고 집요하게 던지다 보면 어느 순간 박이 빵 터지면서 활짝 입을 벌리는 것처럼..


아직 내가 창조해낸 것들은 대단하지 않다. 대단한 직장에 취업한 것도, 스타작가가 된 것도, 값비싼 집을 구한 것도 아니지만 머릿속으로 그려온 것들을 하나하나 현실화시키면서 수확할 수 있었던 건 "삶에 대한 애정""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두 가지는 남은 나의 삶을 완전하게 변화시켜주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될 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다.


이 기적 같은 에너지를 얻은 내가 2022년에는 어떤 일을 벌일까? 또 어떤 걸 창조해 낼 수 있을까?


내일이 기대되는 인생을 얻게 되어 감사하고 뜻깊었던 202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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