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했지만 버텼다
나는 몸이 완전히 무너졌었다.
태어날 때부터 저체중이었고
잔병치레가 많았다.
밥 먹는 일은 늘 귀찮고 싫었다.
스무 살 이후 내 몸무게는
늘 40킬로 근처를 맴돌았다.
몸은 약했지만 , 일은 열심히 했다.
아파도 빠지지 않았고 , 힘들어도 버텼다.
간호사로서의 책임감이 있었고
솔직히 말하면
깡도 좀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까지 아빠에게 가버린 그날까지
늘 아팠다.
몸이 먼저 슬픔을 알아본 것처럼.
서른 대 후반 어느 날,
면역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모기 한 방에 발등을 물렸다.
별일 아니라고 넘겼는데
그게 순식간에 봉와직염으로 번졌다.
깁스를 하고
염증은 다리를 타고 올라왔고
결국 한 달을 병원에 입원했다.
매일 항생제를 맞다 보니 혈관은 다 망가졌고
중심정맥주사관을 꽂아야 할 정도였다.
아프니 밥을 먹어야 했지만 나는 더 먹지 못했다.
몸무게는 38킬로까지 빠졌다.
어느 날,
아빠와 엄마가 병실로 오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팥밥을
도시락에 싸 들고.
아빠는
밥상을 내 앞에 놓으며 아주 조용히 말했다.
“우리 딸,
이 밥 한 그릇만 다 먹으면
아빠는 소원이 없다.”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밥을 씹을 힘도 없었지만 나는 밥을 씹지 않고 넘겼다.
“맛있다”는 말을 반복하며
한 숟갈, 또 한 숟갈. 기어코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그 순간 아빠는 두 팔을 번쩍 들고
아이처럼 외쳤다.
“우리 딸 만세다. 만세.”
곧 칠십을 바라보던 아빠가 서른아홉 딸이
밥 한 공기 다 먹었다고 만세를 부르던 그 장면 앞에서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어버리고 말았다.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그날 처음 알았다.
아,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소중한 사람이었구나.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여전히 완벽하게 튼튼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제는 나를 혹사시키지 않고
일할 줄 아는 간호사가 되었다.
일을 계속할수록 오히려 더 건강해진다.
아픈 몸으로 버텨온 시간 덕분에
이제는 나를 돌보는 법을 조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의 내 모습을
아빠가 보신다면
뭐라고 하실까.
아마 길게 말하지는 않으셨을 거다.
운전대를 잡은 채
앞만 보며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그래.
그래도 일은 참 열심히 했다.”
그리고 속으로는
그날 병실에서처럼
또 한 번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밥 한 공기를 먹은 딸이 아니라,
아파도 책임을 놓지 않았고
이제는 자기 몸까지 돌보며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