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프라이드 베타, 아빠의 첫 차
큰언니가 결혼 후, 축하금으로 아빠께 차를 사드렸다.
1990년식 프라이드 베타.
아빠 인생의 첫 자동차였다.
공무원 박봉에 늘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셨던 아빠는
그 차를 받는 순간, 마치 날개를 단 것 같았다.
운전은 서툴렀지만,
운전 자체가 취미가 되고 특기가 되어
어디든 자가용으로 다니는 재미에 푹 빠지셨다.
마치 어릴 적 갖고 싶던 장난감을 늦게 손에 넣은 아이처럼 말이다.
02. 사고도, 사랑도 컸던 두 번째 차
5년 후, 작은언니가 구몬수학 지부장이 된 기념으로
아빠께 소나타를 선물했다.
아빠는 그 차로 원주에서 춘천까지 매일 출퇴근하셨다.
그러던 어느 겨울, 빙판길에 차가 미끄러져
차는 반파되고, 아빠도 크게 다치셨다.
견적이 천만 원 가까이 나올 정도로 큰 사고였지만
다행히 아빠는 다시 회복하셨고,
우린 또 한 번, 아빠의 차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03. 리본을 단 차와 “똥을 쌀 년”
2004년,
박신양 광고로 한창 인기 있던 ‘매그너스’가 유행하던 해. 나는 아빠의 퇴직을 기념하며,
마지막 출근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아빠를 위해
리본과 풍선으로 장식한 차를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뒀다.
“아빠 사랑해요”라는 커다란 글귀까지 붙여서.
퇴근 후, 차를 본 아빠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내게 이렇게 말했다.
“똥을 쌀 년!!!”
그리고는 한참을 웃으셨다.
그 말, 아빠식 표현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줘서 감동이다”라는.
04. 아빠와 차, 그리고 손세차 이야기
아빠는 그 매그너스를 유독 아끼셨다.
매일 손수 세차하고, 커버까지 씌우며
차를 아이처럼 다루셨다.
운전은 여전히 못하셨지만
드라이브만큼은 누구보다 사랑하셨다.
졸음운전으로 남의 논에 빠진 적도 있고,
후진하다 전봇대를 들이받고는
“전봇대가 갑자기 거기 있었어!”
라고 하시던 아빠.
어쩌면 우리는 차를 사드린 게 아니라
자유와 기쁨을 선물한 것일지도 모른다.
05. 아빠의 차, 그리고 나의 기억
요즘도 오래된 중고차 특유의 석유 냄새를 맡으면
어릴 적, 아빠 차에 타고 있던 내가 떠오른다.
창문 너머로 바람이 들어오고,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이미자 노래 한 곡.
그리고 조수석에 앉은 내가 느꼈던
세상 가장 든든한 옆자리.
우리가 사드린 차들이었지만
사실은 아빠가 우리를 태워
평생의 기억으로 데려다준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