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이 너무 진해서 , 마음이 더 깊어졌다

by 손샤인

우리 아빠 생신은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었다.

잊으래야 잊을 수 없게 만드시더니

5월 8일, 어버이날에 하늘로 가셨다.

어릴 적 우리 집 마당엔 늘 백합이 있었다.

할머니 말로는, 아빠가 가장 좋아하시는 꽃이라 하셨다

중학생이 되던 해, 아파트로 이사 온 첫 생신날

나는 백합 세 송이를 생신선물로 아빠에게 드렸다.

내색은 안 하셨지만, 분명히 좋아하셨다.

꽃병에 꽂아 아빠 방에 두었지만

얼마 안 가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와

향이 너무 강하다며 거실로 옮기시던 아빠.

사실 나도 방에 들어갔다가 질식할 뻔했다

그날 이후, 백합 향이 코끝을 스치면

나는 문득 아빠를 떠올린다.

차가운 꽃병 속에 담긴 딸의 마음을

조용히, 그러나 깊게 받아주던 아빠.

무슨 말보다, 무슨 표현보다

그날 아빠의 멋쩍은 웃음이

그저 다 안다는 듯한 그 표정이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알게 되었다.

사랑은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때론 향기처럼, 웃음처럼

조용히 머무는 것임을. 백합의 향은 강했고

아빠의 사랑은 깊었고

그날 나는,

그 향기 속에서 처음으로

아빠와 나의 마음이 닿았다는 걸 느꼈다.

그러니 난 개의치 않았다.

꽃은 거실에 있었지만 내 마음은,

아빠의 마음 위에 곱게 놓여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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