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위기사이’

by 손샤인

여행을 다녀오면 늘 그렇다.

몸은 피곤하고 마음은 공허하다.

‘또 언제 여행을 가지?’ 그 기대감으로 나를 달래 본다.

그리고 이번엔 여행이 아닌 셔플이었다.

고급반 수료를 위해 한 달간,

퇴근 후 인천까지 달려가야 했다.

러시아워, 출퇴근 전쟁.

평소 40분이면 가는 길을 두 시간 반 넘게 가다 서다 반복하다 도착해서 두 시간 동안 셔플을 췄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너무 지치고 배가 고픈데도,

음식조차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 마지막 수업까지 마쳤고, 고급반 수료라는 작은 성취를 손에 쥐었다.

언니들은 나보다 한 단계 위인 전문가반이다.

이번 주엔 대전에서 전문가반 시험이 있다.

큰언니는 무릎을 다쳐 셔플을 쉬고 있는 상황인데, 그런데도 “무조건 시험은 본다”라고 한다.

걱정이 되었다. 제발, 다음 기회에 나랑 함께 보자고 부탁… 아니, 사정까지 해봤지만 언니는 이미 셔플에 푹 빠진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춤을 안 추면 우울해져…”

그 말에 더는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언니들의 시험을 응원하기 위해 정성껏 떡과 젤리, 박카스를 준비했다.

이게 뭐 대단하냐고?

언니들을 향한 나의 마음은 늘,

이런 작은 것들에 담겨 있다

전문가반만 참석할 수 있는 대전 셔플 워크숍.

나는 갈 수 없었지만,

그날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오늘은 오빠랑 함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집회에 나가자.”

그날의 집회는 특별했다.

이미 탄핵이 이루어진 지는 몇 달이 지났지만,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은 여전히 미뤄진 채였다.

온 나라가 멈춘 듯한 상태. 그래서 우리는 다시 모였다.

헌재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기 위해. 겨울의 끝자락. 달력은 3월을 가리켰지만 공기는

여전히 겨울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찬바람은 살을 파고들었고, 햇살은 있었지만 따뜻하진 않았다.

낮부터 밤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서 있었다.

같은 뜻, 같은 목소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재는 조속히 판결하라!”

지쳐도 좋았다.

발이 아파도, 손끝이 시려도 괜찮았다.

우리는 하나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뜨거웠다.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각. 서서히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와 오빠도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우리는 길을 잘못 들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구호 소리가 들리는 방향이라 그저 따라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위기가 달랐다.

구호가 낯설었고, 사람들의 얼굴엔 날이 서 있었다.

그리고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우리는 그날, 반대 진영의 집회 한가운데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요동쳤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칠 수 없는 그 자리에서

나는 오빠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애써 구호를 외치는 척했다.

마치 우리도 같은 편인 것처럼.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날카로운 시선.

기묘한 정적.

그들은 우리가 ‘다름’을 감지한 듯 의심의 눈초리로

우리를 훑었다.

우리는 위험했다.

누구보다 조용히, 그러나 누구보다 간절하게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오빠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손은 그날 세상 그 무엇보다 따뜻했다.

그 손이 있어서,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몸의 피로보다 마음의 공포가 더 컸다.

하루 종일 찬바람에 있었지만,

그 순간 느꼈던 얼어붙는 듯한 시선과 공포가

나를 더 지치게 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이 나라의 분열이 얼마나

차가운지를 얼마나 무서운지를 온몸으로 실감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짐했다.

쉽게 분노하지 않기로.

더 조심스럽게,

더 단단하게,

내가 믿는 가치를 지키기로.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절대 놓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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