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바람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헌재는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지난 12월 초, 계엄령 얘기가 나왔던 그 순간부터
우리는 수없이 거리로 나가 외쳤다.
아니, 외친 게 아니라, 울부짖었다.
나는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일엔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한 가지 바람이 분명해졌다.
‘내 아이가,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당당하게 살아가길.’
그 마음 하나로 거리로 나섰고,
계절이 바뀌어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여당, 야당을 떠나
나는 그냥 이 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길 바랐을 뿐이다.
누구나 살고 싶은 나라. 살맛 나는 대한민국.
그리고 지금,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분이 무너진 경제를 세우고, 혼란스러운 정국을 안정시켜 다시금 우리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정치적 격랑의 한가운데서 또 한 해가 흘러
어버이날이 다가왔다.
11년 전, 바로 이 날,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날 이후 매년 어버이날은 카네이션 대신 국화꽃을 드리는 슬픔의 날이 되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달라졌다.
우리가 배워온 셔플을 아빠, 엄마 앞에서 ‘재롱잔치’처럼 선보이기로 한 것이다.
의상도 맞추고, 모자도 준비하고, 우리는 오십이 넘은 딸들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다시 아이가 되기로 했다.
산소 앞에 서서 춤을 추었다.
살아계실 때 한 번도 보여드리지 못한 춤.
이제야 가장 진심으로,
가장 즐겁게 드릴 수 있는 선물. 누가 보면
“나이 들어서 주책”이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님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아이이고,
아이의 재롱은 언제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효도란, 내가 할 수 있는 걸 즐겁게 하는 것.
비록 낼모레 환갑일지라도,
그 어떤 것도 문제 되지 않는다.
나이는 숫자일 뿐, 사랑은 여전히 유효하니까.
셔플 전엔, 우린 그냥 자매들이었다.
함께 자라긴 했지만,
삶의 무게가 각자 달라서 그만큼 마음의 거리도 있었다. 하지만 셔플을 시작한 후,
우리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서툰 스텝에 깔깔 웃고,
박자에 맞추다 삐끗한 순간마저 추억이 되고,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너무도 가볍고 환했다.
셔플은 우리 자매의 끈이다.
그 끈으로 우린 다시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알게 됐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가장 큰 응원자라는 걸.
셔플로 우리는 강해졌고, 무엇보다 친해졌다.
이제는 안다.
우리가 함께 스텝을 맞추는 시간들
단지 춤 연습이 아니라
서로를 다시 알아가고, 품어가는 시간이라는 걸.
셋이서 땀 흘리며 웃고,
실수에 깔깔대며 다시 추는 이 순간들 속에
우리는 가장 진한 자매애를 되찾았다.
셔플은 우리의 취미가 아니다.
몸은 예전 같지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춤출 수 있고,
함께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발은 셔플을 추고,
마음은 서로를 향해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