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는 동안, 나는 인간의 힘과 연약함을 동시에 마주했다.
수천 년 전 전쟁터에서 흘린 피와 눈물이, 지금 이 순간 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일리아스』 속 영웅들은 누구보다 용맹했지만, 동시에 끝없는 분노와 집착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킬레우스가 보여준 분노는 인간의 본능적 감정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알려준다.
신들은 자비와 용서를 말했지만, 인간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결국 전쟁은 그 분노의 연장선에서 계속되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간호사로서 병동에서 본 환자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 순간, 사람은 누구나 이성을 잃고 감정에 잠식된다. 분노와 슬픔은 시대와 장소를 넘어 동일했다.
그러나 『일리아스』가 단순히 전쟁의 기록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 죽음을 앞둔 자의 두려움, 친구를 잃은 자의 절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특히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아킬레우스의 통곡은, 환자의 임종 곁에서 울던 가족의 모습과 겹쳐졌다.
그 눈물은 패배의 눈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끝내 피할 수 없는 상실의 눈물이었다.
책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신조차 인간의 집념과 고통 앞에서는 놀라워했다는데, 그렇다면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복잡하고 위대한가.
전쟁은 파괴를 낳았지만, 그 속에서 태어난 사랑과 우정, 비극의 이야기는 수천 년을 넘어 여전히 읽히고 있다.
아마도 인간의 이야기는, 상처와 치유가 공존하는 곳에서 더 깊이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일리아스』는 내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니? 너의 분노와 집념은 누구를 위한 것이니?”
나는 잠시 멈춰 내 삶을 돌아본다.
환자의 곁을 지키며, 가족을 사랑하며, 글을 쓰며 살아온 나의 싸움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결국 답은 하나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기 위해.
수천 년 전 트로이 전쟁터에서 울려 퍼진 그 절규가, 오늘의 나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