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하루 종일 불편했던 환자들의 얼굴이 떠다니듯 스쳐 간다.
울던 아이, 버티던 노인, 지쳐 있던 환자…
나는 눈물을 삼키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버릇만 늘었다.
간호사라는 이름, 한 사람의 딸이자 엄마인 나의 무게들은 늘 나를 향했지만
나 자신에게는 한 번도 따뜻하지 못했다.
벗어나야 할 상처는 손끝에서 커피처럼 번져만 갔다.
그때 나는 글을 썼다.
처음에는 거의 울면서였다.
“오늘은 너무 힘들었어. 울고 싶었다.”
짧고 단순한 문장 속에서, 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손끝으로 마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서 잠들어 있던 나를 찾아냈다.
엄마의 웃음,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아버지의 병상에서 붙잡던 마지막 손길…
그 기억들을 글로 옮기는 동안 나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나는 간호사이자 엄마이자 아내였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그저 ‘나 자신’이 되었다.
손끝이 놀라울 만큼 솔직해졌고,
마음은 비로소 편안해졌다.
글은 나에게 닫혀 있던 감정의 문을 열게 했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다정하지 못했던 부끄러움,
남편에게 향한 미안함, 동생에게 전하지 못한 위로,
엄마의 사랑이 그리워 썼던 눈물의 문장들.
그것을 쓰고 나면 마음 한쪽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히려 내 불완전함이 사람을
더 따뜻하게 이해하게 했다.
글쓰기는 나의 감정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작업이었다.
언젠가 ‘글쓰기는 나의 구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엄마, 아빠가 떠난 뒤 허전했던 빈자리를
오래 라이터스라는 글쓰기 모임이 채워주었다.
마음의 병동에서 만난 동료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맞아, 나도 그래.” “괜찮아, 잘하고 있어.”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 짧은 위로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글도
나를 다독이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글쓰기가 나를 살렸고,
마음 안의 나를 지켜준 것도 결국 글이었다.
나는 매일 나의 ‘조용한 현자’를 만난다.
글쓰기는 나의 거울이자 나의 등불이다.
그리움의 그림으로 나는 오늘도 대기한다.
엄마로, 간호사로, 그리고 ‘은영’이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다시 연결되기 위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