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잔인해질수록, 나는 더 따뜻해질 것이다.

[100-03]

by 손샤인

요즘 들어 알고리즘이 무섭다. 한 번이라도 멈춰본 영상, 오래 머물러본 장면 하나로 내 피드엔 비슷한 영상이 끝없이 이어진다. 유기견, 유기묘, 학대당한 동물들, 버려진 생명들. 그들의 눈빛이 내 안으로 스며든다. 손가락은 멈추지만 마음은 도망치지 못한다. 한 번 본 장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밥을 먹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문득 그 얼굴이 떠오른다. 차가운 바닥 위에서 떨던 눈빛,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기다리던 생의 흔적. 그 모든 것이 오래도록 마음을 붙잡는다. “이 세상에 왜 이렇게 잔인한 장면이 많을까.” “왜 나는 이런 걸 그냥 넘기지 못할까.” 어쩌면 나는 너무 예민한 걸지도 모른다. 세상엔 원래 잔인한 일들이 있었고, 모두가 그걸 다 품고 살 순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모른 척하는 게 나에겐 더 어렵다. 보지 않아도 들린다. 그들의 울음이, 바람처럼 스며드는 생명의 온기가. 어떤 날은 그 장면들이 머릿속을 떠돌며 내 하루를 잠식한다. 마음이 무겁고, 세상이 낯설게 느껴진다. 그때마다 나는 묻는다. “왜 나는 이렇게 마음이 약할까.” “왜 이렇게 자꾸 마음이 흔들릴까.”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뀐다. 약해서 그런 게 아니라, 아직 따뜻하기 때문이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그런 영상은 보지 마, 마음만 다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외면하는 순간, 마치 내가 그 잔인함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세상의 폭력은 언제나 무관심 속에서 자란다. 내가 외면하는 동안, 누군가는 또 버려지고, 또 울고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나는 도망치지 못한다. 아프지만 본다. 그리고 그 아픔을 견디며 다짐한다. 나는 무뎌지지 않겠다고. 세상이 잔인해질수록, 나는 더 따뜻해질 거라고. 그게 내가 이 불편함을 견디는 방식이다. 누군가는 이런 마음을 감정 소모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불편함은 인간으로서 남아 있다는 증거다. 마음이 다치는 만큼 더 많은 생명을 바라보게 되고, 그들의 고통을 내 안의 언어로 바꾸게 된다. 나는 글을 쓴다. 누군가의 무심한 스크롤 사이에서 잠시 멈추게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잔인한 세상에도 아직 마음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이. 언젠가 나의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단 한 번이라도 손을 멈추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은 여전히 잔인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마음이 무뎌지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다면, 세상은 완전히 차가워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인간으로서의 감각을 잃지 않겠다고. 그게 내가 세상을 견디는 힘이며, 내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책과 강연#백일백장 26기#책강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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