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데 몰랐다
아닌 걸 알면서도 그 길을 가 볼 수 있는 용기
아는데 몰랐다. 나는 어렸을 때 시험을 치고 나서 틀린 문제로 오답노트를 만들 때면 꼭 그랬다. 꼭 그런 문제가 하나씩 나왔다. 아는데 몰랐는 문제. 그래서, 아는데 틀린 문제.
이 모순적인 말은 내 삶을 관통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데 어떤 순간엔 도무지 모르는 선택을 했다. 나조차도 왜 그랬는지 모를 선택 말이다. 그랬다.
대체 왜 그랬는가.
그러니까 '아는데 몰랐다'는 건 '생각이 안 났다'라는 의미 반,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라는 의미 반이었다.
그러니까 생각이 안 나서 아는데도 몰랐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의 '아는데 몰랐다'는 다음과 같았다.
"(지금은) 아는데 (그때는) 몰랐다."
또는,
"(아닌걸)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이렇게 된 걸까.
때로는, 누군가 인생에 정답을 알려주면.. 싶었지만 그래도 어차피 정답대로 안 하고 내가 하고픈대로 할 것이란 걸 그때도 지금도 알고 있다. 결국 다 내가 선택한 결과다. 또 그 덕분에 하게 된 몇 가지 모험으로 내 인생은 더 재밌고 '나'다워졌다.
한 번쯤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약속 장소를 향해 일찍 나선 날이면, 가지 않았던 길로도 가본다. 모두가 비슷한 메뉴를 고를 때 오기로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보기도 한다. 호기심에, 재미로, 무심코 내린 그런 결정들 덕에 때로는 약속 장소에 더 늦게 도착하기도 하고 입맛을 버리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재밌는 에피소드가 내 인생에 추가되곤 한다.
지금은 다르다. 안전한 선택을 한다. 피곤해서, 귀찮아서, 그저 그런 안일한 이유로 이미 검증된 것을 고른다. 너무 많은 설명과 조언에 지쳤으므로 눈과 귀를 닫고 남들과 비슷한 결정을 내린다. 남들처럼 하면, 중간은 간다는 말을 떠올리며.
그러니 아무것이나 찍어볼 수 있는 여유, 아닌 걸 알면서도 그 길을 가 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의 경험을 얻어볼 기회가 그립다.
그것들 모두 나의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