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다. 꿈. 하고 싶은 '직업' 말고 되고 싶은 '나' 말이다. 나의 빼앗긴 많은 낱말들 중에 가장 아픈 것이 바로 '꿈'아닐까.
나는 되고픈 것이 많은 아이였다. 하고픈 것도 많았고, 배우며 알고 싶었고,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일주일에도 몇 번씩 꿈이 바뀌고, 생겨나고, 사라지고, 현실을 살면서도 꿈을 꾸는 삶을 살았다. 기대에 부풀어서 밤 잠을 설쳤다. 나의 많은 '꿈 헤는 밤'들이 나를 성장시키리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정작 결정을 내리는 것은 두려워했다. 최대한 유예하고 싶었다. 무엇이 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많은 청사진을 그렸지만 행동에 옮기는 것에는 주저함이 많았다.
나는 정말 정말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최대한 늦게 어른이 되고 싶었다. 모순된 양가감정이 늘 맞섰다. 왜냐면 어떠한 선택의 뒤에 따라올 결과가 두려웠으니까. 나는 너무나 열심히 공부해서, 간절해서 오히려 시험지 앞에서 백지장처럼 하얘진 어린아이처럼 삶의 중요한 순간들 마다 얼어붙었다. 오지선다의 객관식 문제 같은 삶에서 항상 마지막까지 두어 개의 보기를 남겨두고 손에 쥔 펜을 서성였다.
내가 선택한 답이 정답이 아닐까 봐 두려워서, OMR카드 위로 칠한 답에 힐끗힐끗 화이트를 걸핏하면 갖다 대는 삶을 살았다. 늘 확신이 없었다. 답을 칠하고도 내가 고른 답은 틀린 답이고, 다른 답이 정답 일 것 같아서 온통 거기에만 신경이 쏠렸다. 그래서 늘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 틈으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
어느 날부터 나는 꿈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생존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던 많은 날 속에서 나의 어제와 오늘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리고 이제야 알겠다.
꿈 헤는 밤,
꿈을 생각하면서 현실의 어려움을 헤쳐 나아갔던 나의 모든 치열한 밤,
그 시간도 내게 '봄'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