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의적 VIP

눈총에 익숙해졌다면 VVIP

by 손시나

-5-


나는 원래 자신만만한 인간이었다.

자기 자신을 믿으면 못 해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오죽했으면, 주위에서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설치냐고 핀잔을 줬을 정도이니. 그 무렵 열입곱 나의 자신감은 나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기반했다.


'나는 강하다'는.

그러나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로움.


잠깐 투명인간 2로 사는 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투명인간 1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렇지만, 투명인간 2가 1 없이 혼자 지내는 건 그 전과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그건 정말 외로움 그 자체였다.


나는 전에 없던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이동시간에도 늘 혼자였다. 수업시간의 조별과제에서 조를 정하라고 했을 때 다들 나를 제외하고 조를 이뤘다. 나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같이 여겨졌다.


그럴수록 나는 고개를 더 빳빳이 들었다. 위축되거나, 소극적인 모습으로 다니는 건 나답지 못했다. 속으론 무서웠지만 그럴수록 더 당당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버텼다. 나는 나를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몇 주의 시간이 흘러도 나를 바라보는 차가운 눈빛은 여전했다.


그들에게 나는 위선자였고 배신자였다.


낙인은 오래갔다.


사실 그전까지 학교가 싫었을지언정 친구는 제법 많았던 나는 교실 안에서 외로워 본 적이 없었다. 외로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나는 나를 피하는 우리 반 친구들의 뒷모습에서, 내 귓가를 스치는 비아냥거리는 말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내게 사형선고와 같다.


그 누구도 나를 공격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건 마치 피구경기가 한 창 인 운동장 경기 한 중간의 '선'이 된 것과 비슷했다. 나는 수가 아니었다. 느 편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럼 차라리 세게 던지고 받는 피구공 역할이면 부딪친 김에 들이받기라도 해서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아니었다. 나의 역할은 경기장의 '선'이고 '경계' 였으며 모두가 다가가거나 밟아선 안 되는 '금'이었다.


슬펐다.

답답했다.


나는 주 두통이 왔고, 교실보다 보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즈음 보건실은 내게 피신처였다. 보다 못한 보건 선생님은 이제 담임선생님의 확인증이 있어야 보건실에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교무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보건실 가게 해주세요."

"집에 가게 해 주세요."

"조퇴시켜 주세요."



교무실 문을 열 때마다 '또 저 학생인가'하는 눈빛들이 느껴졌다. 도 회피하기는 싫었다. 버티고 버텼지만 상황은 버겁기만 했다.



그렇게 나는 '교무실의 VIP'가 되었다.

그냥 VIP도 아니었다. 그 눈총을 받아내고도 뻔뻔하고 꿋꿋하게 보건실 입실증과 조퇴증을 번갈아 들이미는 VVIP에 등극하고야 말았다.





그날도 보건실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나는 이를 갈고 있었다. 우리 반 학생들을 향한 분노는 아니었다. 나는 슬프게도 그들을 절반쯤 이해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척 한 적 있으니까. 침묵했던 적이 있으니까.

그래서,


'학교 망해라'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학교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오로지 학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제 겨우 4월 말이었다. 시간은 더디게 갔고, 하루는 너무 길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하게 행동했지만,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더 무너져 내렸. 수업 시간에도 내 두 눈은 칠판이 아니라 창밖의 국기게양대를 더 자주 향했다. 날아가고 싶어서 펄럭거리지만 끈에 꽉 묶여 매달려있는 태극기가 꼭 나 자신 같아서 속으로 눈물이 났다.


그렇지만 내 행동에 후회는 없었다.

알량한 자존심 따위가 아니라,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돌리더라도 나는 그 애에게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러니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성찰할 것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피하거나, 돌파하거나.


피한다면 전학이나 자퇴고 돌파한다면..? 그다음은 예측이 되지 않았다.


자퇴는 중학교 때부터 이미 몇 번이나 노래를 불렀지만 불가능한 선택지였다. 그리고 나는 나를 위한 대안으로 자퇴를 선택하는 것이었지 도피로 자퇴나 전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왜 피해야 하는가. 억울함이 가득했다.


그러니까 돌파해야겠다.

상황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내 마음부터 바꿔야 했다.


"학교 망해라"가 아니라,

"학교 변해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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