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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세자가 오니 이는 하늘의 뜻이다

불개토풍

by 하얀돌

(한민족에 맞섰던 나라와 민족 https://brunch.co.kr/@sonsson/31)


몽골은 약 30년간 총 9번에 걸쳐 고려를 침략했다. 전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었던 몽골의 전사들이 이렇게 오랜 기간 이렇게 여러 번 공격을 감행하고도 결국 깔끔한 결론을 보지못한 사례는 고려가 유일했다. 남송이 40여년에 걸쳐 가장 치열하게 저항했다고 하지만, 결국 홍콩인근 애산까지 몰린 끝에 7살된 황제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러시아와 폴란드와 헝가리는 몽골군이 한 번 휩쓸고 가는 통상적인 공격 끝에 잿더미가 되도록 초토화 되었고 당시 유럽의 강국이라 불릴만했던 폴란드는 크게 기가 꺾이고 다시 위상을 회복하는데 긴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이 곳 저 곳에서 치이며 백인 노예의 주요 충원지였던 러시아는 새로이 수 백 년에 걸친 칸국의 예속국이 되었다.


유럽과 이집트와 함께 근동의 대제국으로 자부심이 높던 페르시아 지역 역시 홀라구의 단 한 번의 원정에 정복되었다.


티벳과 중국 사이에서 오랜 기간 독립 왕조를 이어왔던 대리국도 쿠빌라이에 의해 단시간에 정리되었으며, 몽골의 압박을 피해 타이족들은 남쪽으로 탈출을 이어갔고 이후 타이족이 주요 구성원이 되는 신흥의 태국이 강성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는 이후로 동남아시아 여러나라의 세력 판세가 뒤흔들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고려는 전 국토가 유린 당하는 속에서도 강화도라는 천연의 요새로 수도를 이전하며 저항을 이어갔고, 몽골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로 3~4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고려를 침공했다. 몽골은 세계 각지의 전쟁터에서 습득한 공격 기술을 동반하고 고려의 약점을 지속적으로 공격했지만, 총사령관이 현지 전쟁터에서 사망하는 유례없는 사건을 겪는 등 결코 정복 활동이 순조롭게 이어지지 못했다.


몽골은 고려 왕족의 입조와 함께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서 나오는 출륙을 조건으로 계속 압박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왕자의 입조와 출륙하겠다는 약속만으로 고려와 강화조약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실제 고려조정이 강화섬을 나와 개성으로 돌아가는 것은 강화가 성립된 후로부터 10여년이 흐른 1270년이 되어서야 이뤄졌다. 몽골은 최초에 설정하였던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고, 고려의 끈질긴 저항에 미봉책으로 타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몽골에 대한 고려의 항복이라는 식으로만 당시를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사실이다


쿠빌라이는 막내동생이었던 아릭부케와의 전쟁에서 고려 세력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드릴 수 있었고, 이를 대단한 행운으로 생각했다. "당 태종이 몸소 정벌했으나 복속시킬 수 없었는데 지금 고려의 세자가 스스로 오니 이는 하늘의 뜻이다"라며 기뻐하고 고려의 풍습을 바꾸도록 하지 않겠다는 불개토풍(不改土風) 등을 약속을 했다.


이는 세조구제(世祖舊制)라고 불리며 이후 몽골의 무리한 요구를 차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옷과 머리에 쓰는 관은 고려의 풍속에 따라 바꿀 필요가 없고, 사신은 오직 원나라 조정이 보내는 것 이외에 모두 금지한다. 개경환도는 고려조정에서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압록강의 군대는 가을에 철수한다. 이전에 보낸 다루가치는 모두 철수한다. 몽고에 자원해 머무른 사람들은 조사하여 돌려보낸다"


몽골의 고려에 대한 우대는 다른 민족과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쿠빌라이는 자신의 딸을 고려왕의 큰 아들에게 시집 보냈고, 이러한 전통은 후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고려의 왕은 원나라 황제의 손자이며 조카이며 사촌이 되었다. 총독이라고 할 다루가치도 공식적으로 고려왕에 비해 서열이 휠씬 낮았다.


공녀 출신이었던 기황후는, 원나라 조정의 안살림을 좌지우지하던 고려 출신 환관들에 의해 이민족 출신임에도 원나라의 제1황후가 되었고, 그녀의 아들이 원나라 최후의 황태자이자 북원의 2대 황제가 되었다. 기황후는 자신의 아들인 원나라의 태자에게 고려 출신 여인을 태자비로 삼게 했다.


몽골왕가와 고려왕가의 혼인풍속은 고구려의 왕과 왕비족, 거란의 왕과 왕비족을 떠올리게 하며, 명나라 태조가 조선의 태조에게 자신의 딸과 조선의 세자인 이방석을 혼인시키자는 제안을 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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