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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소리_2_유대인과 집시

금기

by 하얀돌

2.


유대인과 집시. 이들은 모두 자신의 고향을 떠나 떠돌았고 자신의 땅을 가지지 못한 채 타향살이를 했던 민족이다. 온갖 핍박과 설움을 당하고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주기적으로 현지 민족들의 분풀이 대상이 되었다. 가는 곳마다 박해와 차별을 당하고 시절이 평탄치 못할 때는 재산을 몰수당하고 살던 곳에서 쫓겨나고 심하면 학살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두 민족은 모두 기존에 자리를 잡고있던 민족들에 의해 멸시의 대상이 되었지만 둘의 처지는 크게 달라졌다. 유대인은 근현대가 되며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갔지만, 집시는 여전히 사회의 밑바닥에서 무시와 천대를 당하는 처지에 머물러 있다. 유대인은 전 세계적으로 유력한 자본가와 학자와 문인과 정치인과 예술가를 배출한데 비해 집시에게는 자랑할 몇 명의 축구 선수와 몇 명의 악기 연주자가 있을 뿐이다.


유대인은 민족의 출발지와 이산의 이유가 비교적 뚜렷하게 알려진 반면, 집시는 인도에서부터 카스트 제도의 억압을 피해 떠나왔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으나 그것이 명확하게 밝혀진 것도 아니다. 집시라는 이름 자체가 이집트의 통행증을 가지고 유럽으로 들어왔기에 불리기 시작한 명칭이라고 하지만, 집시 민족이 이집트인들과 인종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집시들은 스스로를 롬(Rom)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중동지역에서는 도마리, 터키에서는 칭게네라고 불리는 등 가는 곳마다 일컬어지는 이름도 다르다.


유대인은 모세오경과 탈무드와 온갖 예법과 관습과 규율에 따라 살아가는 계율의 민족인 반면, 집시는 특정 종교도 특정 계율도 특별히 고수하지 않는다. 집시는 그들이 머무는 지역에 따라 그 지역에서 주요 종교가 되는 힌두교를, 이슬람교를, 기독교를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집시들만의 문화라 할 것도 특별히 구별짓기 쉽지 않다. 집시들의 언어인 롬어는 자신들만의 고정된 표기체계가 없고 로마문자로도 키릴문자로도 인도의 데바나가리 문자로도 표기 된다. 말하자면 한국어가 한글로도 한자로도 로마자로도 키릴문자로도 기록되는 것이다.


유대인은 기록과 전통에 집착하였고 여러 사항들에 대해서도 지켜야 할 금기가 매우 많았다. 유대인이 토라(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얼마나 소중히 다루는지 알 수 있는 구절이 있다.


"토라는 송아지 가죽에 기록되어야 한다. 큰 소는 가죽이 두꺼워서 안된다. 이 송아지는 도축되어서는 안되고 자연사한 송아지여야 한다. 서기관은 토라를 기록하다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면 목욕을 하고 와서 기록하여야 하고 사용하던 펜을 버리고 새로운 펜으로 다시 써야한다. 서기관은 토라를 기록할 때 하느님 이라는 단어에서 한 획이라도 틀릴 경우 페이지를 뜯어내고 다시 써야한다. 서기관은 토라를 기록할 때 정결한 깃털이나 갈대로만 기록해야 하고 철로 된 필기구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서기관은 뜻을 묵상하면서 천천히 기록하여야 한다"


유대인의 음식에 대한 금기는 이슬람의 할랄 음식에 대한 기원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코셔 푸드라는 방식으로 매우 엄격하게 강요된다.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못한다'하여 고기와 유제품을 동시에 섭취하는 것을 엄금하고 있으며 우유가 들어가있는 밀크커피도 육식을 한 다음에는 마시지 못하게 할 정도이다. 육류의 경우도 유대교의 의식에 따라 도살된 것만 섭취할 수 있고, 우유나 포도주도 유대교인의 감독하에 생산된 것이 아니면 금기시 된다. 수산물은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만 먹을 수 있고, 조개류나 갑각류나 장어 등은 먹을 수 없다. 육류는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초식 동물만 먹을 수 있다. 빵의 경우는 신성한 것으로 취급되어 칼로 자르지 않고 손으로 뜯어서 먹는다. 채소도 벌레먹은 자국이 있는 것은 더럽혀진 것으로 판단되어 코셔가 아닌 것으로 취급된다.


집시는 특별히 집착하는 복장이 없어 거주하는 지역마다 그곳 복장 따르기를 거부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민족의상도 특별히 없고 실을 잦고 옷감을 짜는 일도 즐겨하지 않는다. 학교에 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에 문맹자도 많을 수 밖에 없다. 고슴도치 고기를 먹고 술을 좋아하며 미성년의 아이들까지 담배를 즐긴다. 즐기면서 되는 대로 살아가는, 계율과 의무를 강요하지 않는 자유분방의 삶이 아닐 수 없다. 19세기 후반이 되어서는 집시들이 자신들의 왕조를 만들기 위해 색다른 노력을 하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내부에서의 반목으로 목표는 달성되기 어려웠고, 별도의 영토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종교와 관습의 차이로 끊임없이 주목의 대상이며 논란거리가 되던 유대인에 대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단행되기도 했다. 1917년 영국 외무장관에 의해서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을 위한 국가를 수립하겠다는 밸푸어 선언이 발표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1948년에는 실제로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이 수립되었다. 1000년 이상 무슬림들의 땅이었던 곳에 유대교의 나라가 들어선 것이다. 집시를 위해서는 1933년 폴리네시아로 집시들을 이주시키자는 의견이 국제연맹에 제기되기도 했었으나 결국은 실현되지 못했다.


두 유랑 민족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스스로를 존귀한 존재로 떠받드는 자들과 스스로를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함부로 대하는 자들. 유대인은 스스로를 신에 의해 선택받은 존재로 여기며 타민족과 분리하여 자리매김한다. 어느 집단이나 민족에게도 모두 일정 정도의 선민의식이 있을 수 있지만 유대인의 경우는 유독 그 정도가 강하였다. 히틀러는 이러한 배타적 민족성에 대해 홀로코스트라는 악행을 저질렀지만, 그 불똥은 집시라는, 행태적으로는 유대인들과 정반대편에 있던 민족에게도 떨어졌다. 책임감 없고, 노동을 싫어하고, 허무맹랑한 점성술을 퍼트리고, 거짓말 잘하고, 소비만 즐긴다는 오명으로 낙인찍힌, 계율의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들에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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