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4.
길주 남대천. 단천 남대천. 이원 남대천. 북청 남대천. 안변 남대천. 양양 남대천. 강릉 남대천. 삼척 오십천. 울진 왕피천. 평해 남대천. 영덕 오십천. 연어는 어떻게 잊지 않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가? 연어는 어떻게 떠나간 남쪽의 큰 개울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가?
무엇도 기억하기 힘든 어리고 어린 날 성냥개비처럼 작은 몸으로 고향을 떠나, 연어는 몇 년 동안이나 수없이 멀고 긴 바다를 떠돌아다닌다. 차가운 바다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알을 낳으러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연어는 다시 돌아올 수 있으므로 연어가 된다.
태어난 곳을 떠나지 않음으로써, 강의 하류에서 다시 돌아와 버림으로써, 바다의 소금에 숨이 끊어져 버림으로써, 바다를 돌아다니다 그곳에 머물러버림으로써, 떠나온 냄새를 잊어버림으로써, 결국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함으로써, 무수한 잠재적 연어들은 마침내 연어가 될 수 없었다.
망아지는 태어나자마자 걸어 다니고 뜀을 뜀으로써 말이 된다. 강아지는 태어나서 바로 눈을 뜨지도 못하지만 그럼으로써 개가 된다. 다른 무엇도 아니며 다른 무엇도 될 수 없으며 다른 무엇도 될 필요가 없는 지금 그대로 지금의 그것이 된다. 현재는 다른 현재가 아니다. 현재는 현재로서 현재이다.
연어가 신통하게도 돌아옴은 은행나무 씨앗이 오백 년 천 년의 은행나무로 자라남과 다르지 않다. 마늘의 여섯 쪽이 줄기를 틔워 땅을 뚫고 올라옴과 다르지 않다. 장미의 가시 속에서 꽃이 붉게 피어남과 다르지 않다. 나비가 번데기의 껍질을 벗고 날개를 펼침과 다르지 않다. 개미가 걸어감과 다르지 않다. 올챙이가 물속에서 숨을 쉼과 다르지 않다.
작은 씨앗 속에 감춰진, 햇빛을 받고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다시 작은 씨앗을 맺게 될 것에 대한 계획이 마침내 시간과 함께 펼쳐짐은, 펼쳐짐이라는 사태가 작은 씨앗과 자라날 계획과 시간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음이다. 작은 씨앗이 없으면 자라날 계획도 없고 계획이 없으면 작은 씨앗도 사라진다.
남원 산내면. 정읍 산내면. 경주 산내면. 밀양 산내면. 산 아래 강물이 지난다. 산에는 고개가 있다. 물을 건너 고개를 넘으면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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