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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소리_5_한글

인류 지성사의 대사건

by 하얀돌

5.


인류 지성사의 대사건으로의 한글. 창조자와 창조원리와 창조이유가 명쾌히 밝혀진 유일한 문자. 가장 쉽고 가장 논리적이고 가장 아름다음 문자. 인간이 발견한 사치스러운 보물. 하늘과 땅과 사람이라는 동양 철학 사상의 세기둥을 모음으로, 문자 역사의 첫 장을 열었던 인간 직관의 상형 원리를 자음으로 결합하여, 한글은 새로운 하나씩의 글자를 창조한다.


한글은 앞선 한문과 이두와 거란 문자와 데바나가리 문자들을 참고하여 제작된다. 뜻과 발음의 구분, 자음과 모음의 결합, 한 글자로 한 발음을 담당하는 아이디어들은 앞 선 문자들의 원리를 통해 도출될 수 있었다. 기술적인 토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으나 이를 하나의 아름답고 쉽고 정교한 구슬로 꿰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한글은 세계 유일의 음소문자이면서 음절문자이다.


복잡한 의미를 하나의 그림이자 기호로 표출하는 한자의 원리에 다시 한글의 표기가 접목되면서, 어떤 문화권의 문자보다 간명하고 효율적인 표기를 이룩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한글로 표기할 경우 총 4자에 6획+7획+7획+6획으로 26획이 필요한데 비해, '大韓民國'은 한자로 표기할 경우 총 4자에 그어지는 선으로만 따져 한글과 비교할 경우 3획+20획+6획+13획으로 41획이 필요하고, 'REPUBLIC OF KOREA'는 총 15자에 17획+4획+14획으로 35획이 필요하다. 한글은 기본자모 24자로 모든 글자를 표현할 수 있고, 영어의 알파벳은 26자이며, 한자는 상용한자 2000여 자 외에 평생을 배워도 다 알기 어려운 전체 5만자가 넘는 문자가 있다.


단순하게 비유하자면 한글로는 100페이지와 100만획의 소설책이 한자로는 100페이지와 157만획이 필요하고, 영어 알파벳으로는 375페이지와 134만획이 필요하다. 경제적 효율성 뿐만 아니라 내용 파악의 편리성에서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고 기록된 내용의 파악과 흡수에도 동일한 차이가 발생된다. 123,458은 십이만삼천사백오십팔, 十二萬三千四百五十八, One hundred twenty-three thousand four hundred fifty-eight가 된다.


한글은 지배층이 피지배층의 어려움을 풀어주기 위해 만든 인류 역사상 유일한 문자이다. 인도의 불가촉천민이 힌두의 경전을 보게 되면 눈을 파버리고, 경전의 내용을 듣게되면 귀머거리로 만들어 버리고, 경전에 닿은 신체 부위를 잘라버렸다는 이야기와는 너무도 멀리 떨어진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지배층은 지식의 독점을 위해 오히려 피지배층이 문자를 해독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문자와 그것을 통한 지식의 획득과 축적과 전수를 자신들 특권의 발로로 삼았던 것이다. 문자와 그를 통해 확보되는 지식을 자신들을 피지배층과 분리하고 차별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수 많은 최만리들이 떼거지로 반발하게 된 이유가 따지고 보면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어리석은 자들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문자를 만든다는 인류 보편에 대한 사랑과, 이를 최고의 논리적 미학적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 지성의, 너무나 놀라운 불꽃 같은 결합이 아닐 수 없다.




#인문 #역사 #철학 #우리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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