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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소리_3_도척

질문

by 하얀돌

3.


"도척은 날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살을 회로 썰어 먹었다. 포악하고 잔인하며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천하를 돌아다녔으나 마침내 수를 다하고 죽었다. 이는 무슨 덕이 있어 그런 것인가? 하는 짓이 도리에 어긋나고 거리낌 없이 악행을 일삼으나 종신토록 안락하며 부유함이 후세에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정당한 곳을 골라 발을 딛고, 때에 맞게 말하고, 요행을 바라지 않고, 올바르지 않은 일을 즐기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매우 의심스럽다. 이른바 하늘의 도라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취묵당 김득신이 십만번 이상을 읽었다는 사기 백이숙제 열전 전체 720여자의 한 구절이다. 그야말로 수없이 긴 기간 동안 수없이 많은 곳에서 수없이 많은 이들이 일으켰던 질문이다. 악한 자들이 왜 잘 살아가는가? 선한 자들이 왜 잘 살지 못하는가? 악한 자들이 잘 사는 것은 옳은가? 선한 자들이 고통을 겪는 것은 옳은가? 묻는 것에서 시작되고, 질문이 던져지는 곳에서 무언가는 움직이게 될 것이다.


하늘의 도리가 따로 존재하는 것인가? 하늘의 도리가 무엇인가? 악행과 선행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질문과 문제의식이야말로 악에 대한 단죄이며 선에 대한 장려의 시작이 아닌가. 악을 미워하여 벌을 주고 선을 좋아하여 복을 주는 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 모여 법이 되고 관습이 되고 어떤 이름의 처분이 된다. 선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모여 도덕이 되고 속담이 되고 어떤 이름의 찬사가 된다. 악이 처벌되어야 한다는 의지에 의해 악은 처벌될 가능성에 놓이게 된다.


어떤 것이 악하고 어떤 것을 미워한다는 어떤 일치되는 뜻과 의지가 없다면, 어떤 것도 악이 될 수 없고 단죄될 수 없다. 의지가 있다면 그에는 자연스럽게 어떤 행위가 뒤따르게 된다. 의지와 행위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의지가 없는 곳이 아니라 의지가 있는 곳을 향해 더 많은 어떤 움직임은 일어나게 될 것이다. 행위가 있다하여 어떤 목적이 꼭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의지와 행위에 영향을 받지만, 어떤 일의 이뤄짐이 이것들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삶이 수 없이 많은 시간, 공간, 환경의 사실들에 영향을 주고받는 것과 같다.


천지는 어질지 않다. 옛 경전에서 말하는 천지불인이라는 것이다. 우주는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만물의 작용이 일어나는 곳일 뿐이다. 악함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악함과 선함을 구분할 기준을 정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기준이 저절로 정해지는가? 기준을 누가 정할 것인가? 기준이 적절함을 판단할 잣대는 무엇인가? 수 많은 사례에 대한 각각의 기준이 그에 맞게 모두 적절히 만들어질 수 있는가? 기준의 적용은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 의문스럽다. 기준의 수립과 적용이 모호할 수 있음은 명백하다.


개인들 마음속의 도덕률이 모두 동일하지도 않으며 개인들의 도덕률을 포괄하게 될 초월적인 하나의 도덕률이 존재하리라는 어떤 주장에 대해서도 쉽게 동의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하나의 도덕률이라는 것이 1 + 1 = 2라는 수학 공식과 같은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수학 공식과 같다 하더라도 앞의 1과 뒤의 1일 전혀 동일한 1인지 그래서 2가 앞의 1의 두 배인지 뒤의 1의 두 배인지 그것은 다시 새로운 논란의 장이 될 것이다.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하여 이것들이 전혀 무시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며 명백한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삶이 이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상대적이며 불완전한 상태로나마 어떤 기준에 대한 인식이 있다. 그 기준에는 일도양단으로 정의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하며, 불분명함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 삶의 현실이다. 성문법이라는 방식을 통해 기준을 고정화하려는 노력이 있겠지만, 그에 연동하여 정해진 법률에 대한 해석의 차이, 시간에 따른 법률의 수정, 폐기 등이 또한 항상 뒤따라 일어났다.


악한 자들이 모두 잘사는 것도 아니며 선한 자들이 모두 힘들게 사는 것도 아니다. 악한 자에게는 당대를 넘어 하늘의 응징이 반드시 이뤄진다는 주장도 있다. 하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하늘의 응징이 어떤 것인지? 하늘의 응징 시효가 언제까지인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응징된다는 그런 주장과 그런 주장을 펼치는 자들과 이런 주장을 수긍하는 자들에 의해 응징은 마침내 응징으로 완성될 수 있다. 응징이 이뤄지지 않을 때 이를 아쉬워할 자는 응징이 이뤄지기를 원하는 자들 이외에는 없다. 응징이 이뤄졌을 때 기뻐할 자들은 응징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아쉬워할 자들 뿐이다.


좋아하는 자 이외에는 좋아하는 자가 없고, 슬퍼하는 자 이외에는 슬퍼하는 자가 없고, 미워하는 자 이외에는 미워하는 자가 없고, 원하는 자 이외에는 원하는 자가 없고, 당하는 자 이외에는 당하는 자가 없고, 행하는 자 이외에는 행하는 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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