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의 첫 번째 난관, 업무분장

공공기관 팀장의 기쁨과 슬픔

by 대기만손
'팀장이 되면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하지?'


팀장 발령 사실을 듣고 가장 처음에 드는 생각이었다.

회사에서 팀장을 어떻게 하라는 교육을 시켜준 것도 아니고, 그런 가이드북 같은게 있는 것도 아니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일단은 팀에 배정된 업무 관련 자료들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을 하는 팀인지 파악부터하는게 먼저이지 싶었고, 그래야 다음 할 일이 떠오를 것 같았다.


그렇게 팀 업무 자료들을 찬찬히 훑어보고 있는데 갑자기 사내 메신저가 요동을 쳤다.

그렇다. 모두의 한 해의 운명을 좌우할 정기인사발령이 사내 게시판에 공지되었다.


나도 어떤 사람들이 나의 첫 팀원이 되는지 묘한 긴장과 궁금증 속에서 스크롤을 내리며 팀원들의 명단을 확인했다. 같이 일해본 사람은 한 명 밖에 없고, 나머지는 안면만 있거나 일면 식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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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만 있거나 일면식이 없는 팀원들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궁금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일단 작년에는 어느팀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부터 찾아보기 시작했고, 이들과 같이 일해봤던 지인들에게는 어떤 사람인지 물어 보기도 했다.


그렇게 팀원들에 대한 정보들이 조금씩 파악이 되니 자연스레 팀 업무자료로 눈이 갔고, 각 업무마다 팀원들이 하나둘씩 매칭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


"아 맞어, 업무분장을 해야하는구나?"




사실 직장인에게 한 해의 시작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업무분장일 것이다. 이 업무라는 것이 그렇게 칼 같이 균형있게 쪼개지지가 않기 때문에 재수가 없으면 일 년 내내 정말 고생만 직싸게 하게 된다.


나도 실무자일 때는 당연히 업무분장이 중요했다. 회사에서 업무라는 것이 내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긴 하지만 그래도 기왕 하는거 해보고 싶은 업무를 분장 받으면 좋은거 아니겠나?


그래도 실무자일 때는 수동적인 입장이다 보니, 받기 전까지는 어떤 업무를 하게 될 지에 대한 궁금증과 긴장감이 있고, 실제로 분장 받았을 때는 하고 싶었던 업무면 쾌재를, 합리적인 업무량이면 안도를, 과중한 업무량이면 쌍욕을(속으로ㅎㅎ) 하는 정도였다면,


팀장은 최소 대여섯명에서 많게는 십여명에 달하는 팀원들 하나하나에게 업무를 '분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적어도 나에게는 상당한 고역이었다. 팀원 개개인의 역량도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데다, 팀 업무도 실제로 인력이 어느정도 소요되는지도 확실치가 않고... 어떻게 분장을 하는 것이 개별 팀원에게 합리적일지 정말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팀원들을 모두 면담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나는 회사 다니면서 업무분장 때문에 팀장과 면담을 해본 적이 없다. 거의 대부분의 팀장들은 별다른 의견수렴 없이 업무분장을 통보했고, 그나마 메일로 참고하겠다며 하고 싶은 업무를 알려 달라고 하는 팀장을 만나면 꽤나 민주적이네?라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내가 팀장이 돼보니, 나는 도저히 개별로 얘기를 나눠보지 않고는 업무분장을 할 수가 없었다. 원하는 바를 다 들어줄 수는 없어도 최소한 그 사람이 싶은 일, 그동안 해왔던 일, 업무를 대하는 태도 뭐 이런 것들은 대화를 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 아닌가?




"그동안 이 업무를 오래했었어서 이번에는 다른 업무를 하고 싶은데?"


"업무 효율성을 위해 자리는 이 곳에 배치를 받고 싶은데요"


"저한테는 너무 부담스러운 업무인거 같은데요?"


"제 커리어 관리 측면에서 저는 올해는 이 업무를 해야 될 것 같아요"


"내가 다른 곳으로 도망가려고 했는데 못 갔어. 작년에도 일이 많았어서 올해는 신경 좀 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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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을 한 바퀴 돌려보니 정말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예상치 못한 요구사항들도 나와서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화를 해보니 누가 어떤 업무를 하는게 나을지 업무분장의 큰 그림이 어느정도는 나왔다.


하지만 윤곽만 나왔을 뿐, 실제로 팀원들의 업무를 정하는데 까지는 정말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팀원들의 얘기는 최대한 세세하게 메모했고 각자의 니즈를 조금이라도 반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개별 담당 업무는 물론이고 누구와 페어로 일할지, 원하는 자리배치까지도 고려했다.


'이것이 최선일까? 누구 하나에게 업무가 과중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최선일까?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이 되었다. 업무를 이렇게도 쪼개보고 저렇게도 쪼개보고, 페어로 일해야 하는 사업은 조합을 이렇게도 짜보고 저렇게도 짜보고...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끌 수도 없었다. 빨리 업무분장을 해야 정기인사발령일에 맞춰 업무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으니까. 주어진 시간은 대략 이틀 정도였던 것 같은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얼추 마감 시한이 다 된 시점에 떨리는 마음으로 완성한 업무분장표를 사내 메일로 전 팀원에게 보냈다.


내가 아무리 고민을 많이 했더라도 팀원 개개인 입장에서는 분장된 본인 업무에 대해 100% 만족하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막상 팀원들에게서 아쉬운 얘기를 들으니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또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원했던거 최소한 하나는 들어주지 않았냐며 소심하게 반론하곤 했다.


팀원A: "제가 이렇게는 업무가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씀드렸자나요ㅠㅠ 제 얘기는 하나도 안들어 주셨네요"
나: "막상 그렇게 어려운건 아니에요. 그리고 하나는 들어줬어요. 자리는 원하는 곳에 배정해줬자나요^^"




올해 팀장 2년차가 되었어도 업무분장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나마 원래있던 팀에 남게 되어 작년보다는 팀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상황이었지만, 정기인사가 늘 그렇듯 많은 팀원들이 바뀌게 되었고 새로운 업무도 팀에 추가되어 업무분장에도 많은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한번 해봐서 올해는 조금 나을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하나의 업무에 얼마나 많은 인력이 소요되는지는... 아직 2년밖에 안해봤기에 섣부를 수 있겠지만, 아마 평생 일해도 이것을 제대로 측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사람이 일을 얼마나 해낼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변수도 너무 많고 사람마다 너무 달라서...ㅠㅠ


그래서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어려운건 알지만 늘 최선을 다해 팀의 업무량과 팀원의 맨파워를 합리적으로 산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뿐이지 싶다. 그 과정에서는 계속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수 밖에 없겠지만, 팀장이라는 자리에서는 해야만 하는 일인 것을 어쩌겠나ㅠㅠ


그래도 그나마 힘이 되었던 것은, 작년에 본인 업무가 너무 부담스러웠다는 팀원A의 한마디였다.

올해는 우리팀을 떠나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났는데, 몇 달 전에 커피챗을 하다가 툭 한마디 던져줬다. 그리고 그 말 덕에 순간에 일희일비 말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그저 최선을 다하자고 다시금 다짐하게 되었다.


"팀장님, 이 팀에 와보니 팀장님이 업무분장하신게 그나마 나은 것 같아요.
사람마다 업무 분배도 적당한거 같고...
사실 작년에도 부담스럽긴 했는데 막상 해보니 할만하긴 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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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팀장으로서의 첫 업무분장이라는 문턱을 겨우 하나 넘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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