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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Sep 15. 2023

러시아의 악당 이미지에 대하여

악당은 당연히 from Russia?

남자친구는 마블스 영화나 미국의 히어로물을 좋아한다. 나도 그런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하루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남자친구가 하는 말에 ‘띵’ 하고 머리를 맞은 적이 있었다.



항상 영화에서 빌런은 러시아인이야


나도 러시아인이 악당으로 등장하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생각해 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다크나이트에서도 악당은 러시아인이었다. 많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당연하게도 악당은 From Russia였다.



만약 할리우드에서 만드는 영화들의 악당이 죄다 한국인이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한국인에겐 악당의 이미지가 없다 보니 왜 한국인이 악당인가 싶어서 몰입도 안 될 것 같고, 우린 미국이랑 친한 나라인데 우리한테 왜 그래? 하는 마음도 들 것 같았다. 하지만 러시아인이 악당이면, ‘그래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 싶었다.


재밌게도, 러시아 사람들은 미국 문화, 미국 영화를 참 좋아하고 동경한다. 모스크바 관련 SNS를 보면 “뉴욕 느낌 나는 사진 찍을만한 장소” 라거나, “미국과 닮은 모스크바의 장소들 “ 이 소개되곤 하는데 반응이 뜨겁다. 주말에 나도 가보면 그 장소들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볼 수 있는데, 러시아인들, 특히 젊은이들은 우리나라처럼 미국을 긍정적으로 보는구나 생각하곤 했다.


모스크바 사람들이 팔로우하는, 팔로워 25.6만 인스타그램 계정. “미국과 닮은 장소” 를 소개하는 포스팅


일상생활 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내가 갑자기 직원과 영어로 대화하면 “오~” 하는 눈으로 옆사람이 우리를 쳐다보는 것도 느껴지기도 한다. (잘해서가 아니라 영어로 대화하는 것 자체를 동경하고 좋게 보는 것 같다.) 러시아에서도 영어를 잘하는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미국과 관련된 것이면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인이 악당인 건,

냉전 시대를 거쳤기에 그 영향이 아직 남아 있고, 그래서 지금도 미국의 적이 러시아가 된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다른 나라가 아닌 러시아가 되는 것이.


다만 내가 한 가지 머리를 맞은 것 같은 포인트는, 내가 많이 노출 돼왔던 매체로 인해 나도 자연스럽게 젖어 있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인지를 하고 세상을 보니, 내가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는 게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으며, 내가 보는 게 다가 아닐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듯하다.


마블스 등 각종 영화계는 미국이 주름잡고 있다 보니 미국의 시각대로 나도 계속 봐왔던 것 같은데, 자기 나라가 매일 악당이면 그것도 그것 나름 슬프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러시아에 현 상황 때문에 이 이미지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유지될 것 같다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지만

러시아에 자연, 여행지, 문화, 그림 등 좋고 착한 게 참 많은데.. 이런 상황들 때문에 그러한 것들이 가려지고, 앞으로도 그 이미지가 지속될 것 같아 그도 매우 아쉽다.


현 상황에 아니라, 러시아의 문화 등 다양한 매력을 좋아하는 것이지만, 마냥 러시아를 좋아한다고 쉽게 말을 뱉을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지라..  “러시아가 악당인 건 당연한 거지”라고 말해도 할 말은 없다.


다만,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왔던 나에 놀라며 이 글을 써보는 것이다. 곧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의 부분들도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도록 나쁜 안개가 걷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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