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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Sep 27. 2023

전쟁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다 할지라도

남자친구는 전쟁으로 인한 우울증이 다소 있는 듯하다. 그도 그렇게 얘기를 하고, 나 역시 그가 너무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게 보여서 심리 상담받아보기를 추천할 정도였다.


남자친구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것에 대해 너무 힘들어하고 있고, 본인의 고국을 사랑하기에 정치가 이 나라를 어렵게 한다는 것에 슬퍼하고 있다. 비단 남자친구뿐 아니라, 내가 만나는 젊은 러시아인들 대부분이 힘들어한다. 오늘도 얘기 나눈 직원 하나는 전쟁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항상 불안감이 있으며 진정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남자들의 경우 전쟁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게 될까 봐 하루하루 두려워하며 살기도 한다. 정치권의 홍보 등 여러 이유로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지만, 적어도 모스크바에서 내가 만난 젊은 이들은 그렇지는 않았다.


지난해 동원령이 있고 지금까지 큰 동원령은 없으나 최근 루머가 다시 돌고 있으며 길에도 경찰 인력이 늘어난 게 보인다. 다시 젊은이들이 긴장하며 살아가고 있다. 옆에서 보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깝다.


정치가 한 나라,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곳에서 느끼고 있다.



투표하기. 한 표라도 나의 권리를 행사할 것

남자친구도 시장 선거 등 투표가 있으면 무조건 그 권리를 행해야 한다며 친구들에게 투표하러 가라 한다. 본인도 어떻게 서든 투표를 하러 가겠다고 모든 일정을 제쳐두고 투표를 하러 갔다.


얼마 전 있었던 모스크바 시장 선거.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정책집이나 선거유세를 길에서 접하지 못 했다. 다만 투표일과 온라인 선거 안내글이 길에 붙어있어서 찰칵.

하지만 민주주의를 행하려고 노력하는데, 노력해도 바뀌기 어려운 상황을 보았다.


얼마 전에 모스크바 시장 선거가 있었다.


모스크바 인구가 1267만 명인데, 투표인원은 330만이었다. 약 26% 만이 투표에 참여한 것이다. 대학교 때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러시아인들은 투표에 가도 바뀌는 게 없다고 생각하기도 해요.”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선거에서도 온라인으로 투표를 하게끔 장려하던 게 눈에 띄었는데, 투표자 330만 명 중 270만 명, 즉 80% 이상이 온라인으로 투표에 참여했다 한다.


사실 이곳에서.. 온라인으로 투표라..?

물음표였다. (할 말이 많지만 생략하겠다.)


하지만 그럴지언정, 나의 목소리를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내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나 하나가 민주주의를 만들어가기 어렵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걸려도, 그런 하나하나가 끝내 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거니까.



정보 수집

요즘 각종 텔레그램 전쟁 관련 뉴스가 올라오는 채널, 안전 관련 채널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나 역시도 열심히 구독 중인데, 남자친구도 늘 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뭘 그리 열심히 보나 보면 항상 뉴스를 읽고 있다.

“조심해, 모스크바” 라는 구독자 23만명 채널. 모스크바에서 일어나는 위험, 화재, 드론 등 안전 관련 공지가 올라온다. (캡처는 누군가 국기에 불질러 1달형에 처해졌단 내용)


하루는 너무 힘들어하니 뉴스를 그만 보는 건 어떠냐 물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전쟁은 이곳의 일, 내 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사는 경우도 보니, 오히려 더 아는 게 그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행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열심히 온갖 채널을 통해 뉴스를 읽고 있다. 이 나라의 일이므로 당연히 본인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고, 또 무엇보다 상황에 반대할지언정 이 나라 자체는 본인이 태어난 사랑하는 고국이기 때문이다.


관심을 끄는 사람이 늘어나는 순간 목소리를 낼 사람은 더 줄어들 것이며, 일부에 의해 나라의 미래가 쉽게, 그리고 오랫동안 결정될 것이기에 관심을 끄면 안 된다.



비상용 가방 싸기

요즘은 이런 심리적인 어려움뿐 아니라, 물리적인 어려움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드론이 연이어 터지다 보니 남자친구랑 우리 비상용 가방 하나 싸둬야 하는 거 아니냐?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나대로 뭘 들고 갈지 고민을 하다가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물과 상비약, 중요서류 등 챙길 물건들이 나왔다. 그래서 가방을 하나 마련했다. 그리고 샴푸와 이런저런 생활용품을 넣었다.


남자친구의 서류 폴더. 와중에 경남은행에서 받은 폴더를 야무지게 챙긴게 웃겨서 찰칵

남자친구는 뭘 쌌냐 물으니 중요서류만 콤팩트하게 챙겼다. 그렇게 우리는 가방도 쌌다. 그러면서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비상 대피용 가방이라니..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 밖에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뭔가를 해보고 있다.


이곳에서 무력함을 느끼며 우리나라에 가면 마음이 트인 기분이 들 것 같은 상상을 하다 보니, 그래도 전쟁 걱정 없는, 내 한 표가 의미 있게 쓰이리라 믿을 수 있는 우리나라가 그리워졌다. 혹자는 아직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경찰을 보며 두려워할 일 없음에, 내가 아니라 생각하는 일에 대해 반대 집회를 열고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 감사했다.


이곳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당연했던 것들을 걱정 없이 누려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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