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크리스마스 인 유럽
밀라노에서 로마행 열차를 탈 때, 열차를 놓쳐버릴까 봐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했다.. 야간열차에 비하면 꽤나 쾌적한 Trenitalia인데, 처음에 타고는 그런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레일패스도 검사받았겠다.. 이제 맘도 좀 편하고 슬슬 배가 고프다..
그러고 보니, 어제저녁 파리를 떠나기 전 라뒤레에서 먹었던 마카롱이 마지막이었구나~
하지만, 먹을 게 없다. 수중에는 Bounty 초코바와 하얏트 리젠시에서 집어온 사과 두 알, 그리고 물병..
형 양과 사이좋게 초코바를 나눠먹고, 사과를 아삭아삭 씹어먹고 , 물도 병나발로 번갈아 마셨다.
우리가 앉았던 열차 좌석은 4명이 마주 보고 앉는 좌석이었는데, 앞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회사의 boss
느낌을 풍기는 늙은 아저씨 두 명.. 얼굴이 주름지고 나이가 들었어도 옷 입은 모양새가 슈트발이 있다.
소매에는 커프스 핀까지 꽂았고.. 열심히 서류를 들여다보며 종이에 끄적거린다.
이런 모습이 이태리 비즈니스맨의 모습 인감?!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는 열심히 먹고 있다.. 데헷!
열차는 2시간을 달려서 로마의 테르미니역 ( ROMA Termini )에 도착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유레일패스에 스탬프부터 박아 넣고, Hotel San Marco 숙소로 향했다.
때마침 로마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 나 파리 비 맞고 왔는데, 넌 로마 비 니? 반갑다 야! ㅋ"
비가 와서 그런지 테르미니역을 나와서 본 로마의 첫인상은 우중충하고 지저분하고, 길에는 노숙자가 물이
질척한 길에 그냥 누워서 비를 맞고 있는.. 상상 속에서는 한 번도 떠 올려 보지 못했던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거지도 꽃거지라고 누가 그랬을까 ?
게다가 길마저 파리와는 달리 죄다 우툴두툴 , 올록볼록 돌이 박힌 길이라 캐리어를 끌기에는 쥐약이었다.
약간은 헤맴을 반복한 끝에 San Marco 호텔에 도착했고, 역시 예상했던 대로 early check in 은 안된단다.. 뽀송한 실내에 들어오니 눅눅한 바깥으로 금방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으나,
여기는 로마라고!! 로마!! 이러고 넋 놓고 있는 건 우리 스타일이 아니라고~
식후경이라고 우리는 지금 당장 배를 채워야 했다.
호텔과 가까운 곳에 그리 고급스럽진 않지만, 피자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가게로 들어갔다.
피자의 본고장에서 피자 치즈가 척~척~ 늘어나는 피자를 생각했었지만, 오늘 우리가 주문한 이 피자는
그런 류가 아니었다. 버섯이 잔뜩 들어간 건강 피자라고 하는 편이 나을 거야~
약간 기름지기는 해도 그리 맛이 나쁘지 않았던 피자를 모두 먹어 치우고는, 느긋함을 되찾아 로마 시내로
나섰다.
이미 한국에서 구입해두었던 로마패스를 테르미니역 information center에 가서 교환해서 받았기에,
이제 버스든 지하철이든 마음대로 마구 부담 없이 올라타도 된다.
로마의 지하철은 우리나라와 같이 노선이 여러 개도 아니고, 시내를 다니는 A, B 두 개의 노선이 비교적
길이도 짧아서 큰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단, 파리보다 더 한 소매치기 출몰지역이기 때문에
항상 경계를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여행자에게는 편리한 수단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테르미니역을 출발하여 지하철 A선 Barberini역에 하차, 트리토네 거리(via del tritone)를 따라 도보로 가다 보면, 트래비 분수 (Trevi Fountain)에 도착할 수 있다. 지도를 들고 다니긴 했는데,
지도 보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인지 까막눈처럼 지도를 보아도 트래비로 직행하는 길을 잘 모르겠는 거다.
비슷한 곳에서 우리와 같이 지도를 들고 헤매는 애들을 보니 약간 위로도 되고.. 이럴 땐 감으로 가보는 게
상책.. 참 희한하게도 감으로 걷다 보니 촤~악~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눈앞에 아름다운 트래비 분수가 나타났다.
생각보다 더 웅장했고, 조각들이 섬세하고 아름다웠으며 , 그 오랜 옛날 만들어진 분수가 그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 놀라웠다. 영화 " 로마의 휴일 " 에도 등장하는 트래비 분수..
영화 속에서 오드리 헵번이 긴 머리를 짧게 자르는 이발소가 트래비 분수 옆에 있었다.
로마에 다시 오고 싶다면 동전 한 개를.. 사랑을 이루고 싶다면 두 개의 동전을 던지라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당연히 형 양과 난 각각 동전 한 개씩을 그것도 굉장히 작은 동전을 분수 속에 던져 넣었다.
분수를 등지고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 뒤로 던져야 한다는데.. 오른손을 쓴 것 같기는 한데 과연 어느 쪽으로
던졌을까? 기억이 가물가물..
트래비 분수 앞에서 꼴값 떨면서 마음껏 사진을 찍은 후에 다시 골목을 걸어서 큰 광장으로 나왔는데,
잠시 소강상태였던 빗방울은 다시금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 야~! 뭐야.. 왜 저 사람들 계단에서 사진 찍고 저러지?! "라고 하면서 " 일단 우리도 찍어봐~"
하고 사진부터 찍고 나중에 보니, 그곳은 그 유명한 스페인 광장이었다.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또 희한하게도 어디를 찾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걷다 보니,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은 격으로 또 그렇게 스페인 광장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드리 헵번처럼 스페인 광장의 계단에서 젤라토 하나쯤은 먹어줬어야 했는데..
도저히 비 오고 바람 불고 좀 춥고, 젤라토 먹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저 또 한 개의 아쉬움이 남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