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18
10분의 마음챙김을 하려고 점심시간 잠시 복도 테이블에 앉았다. 잘 되지는 않았다. 뜨거운 물에 티백을 넣고, 티백 속 찻잎들이 물결을 따라 흐늘거리는 것을 바라보고...음...그리해도 현실감은 좀처럼 찾아오질 않아서, 이따금 입김을 불어 차 냄새를 맡았다.
모든 것을 마치 공부하듯 이해해서 익히려 하는 나의 성향상, 명상을 '습득'하는 건 쉽지 않았다. 상담과 책을 통해 명상이 어떤 특별한 깨달음의 경지라거나, 유체이탈처럼 정신이 다른 차원으로 접속되는 그런 따위는 아니라는 것까지는 알게 됐지만. 유튜브의 '마음챙김' 영상들처럼, 명상만 하면 그 순간 정말 나의 마음이 '챙겨질' 줄로만 기대했었다. 효과가 없는 것은 나의 마음이 성급한 탓이겠지.
2020.2.27
하지만 허술하게나마 마음챙김을 시작한 이래로 생긴 신기한 변화는, 우연인지 몰라도 예전 만큼 자괴감으로 나를 괴롭히지는 않게 됐다는 것이다. 우울감에서 빠져나오는 건, 스스로 자각하기 전에 이미 자기도 모르게 물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헤엄을 치고 있을 때 이뤄진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 차리고 보면 물 밖인 것이다. 숨이 막히는 때에는 어떻게 발버둥을 치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사실 본능적으로 심연에서 나를 꺼내 올리기 위한 갖은 노력을 하나둘씩 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빠져 나와서 돌아보면, 그런 길을 왔구나 깨닫는 것. 어떻게든 살겠다는 마음, 잊었지만 어딘가에 숨어있던 열망, 미련. 그것이 결코 없지 않았기에, 오히려 사는 나날들이 물 속에 빠진 듯 괴로웠던 것 같다. 괴로워서 지푸라기라도 찾아 허우적대게 만드는 그 끈질긴 삶의 흐름을 믿는 것도 괜찮다. 그러면 어디든 뭍에는 도달하게 될테니.
코로나로 난리지만 미세먼지도, 하늘도, 기온도 좋던 3월이 왔다. 2월, 작은 병실 한 켠에서 어둡게 불 꺼둔 가운데 코코에게 속삭였었다. 봄바람 느낄 수 있을 때까지만 살면 좋겠다고. 그런데 3월을 앞둔 어느 하루 따스한 낮, 익숙한 공원 화단길을 코코가 힘차게 걸었다. 마음이 풍족했다. 따스한 무언가가 아래에서부터 차오르는 느낌. 꽉 채워지는 감정. 코코의 목줄을 잡고 봄기운을 느끼며,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맙다, 다행이다, 기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마저도 나를 위해, 내가 너무 한꺼번에 갑자기 무너지지 않도록 준비시켜주는 것 같다. 언니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