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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owhat Nov 29. 2021

나의 강아지를 보내는 일기 6

2020.3.22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상태라고 한다. 행복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을 필요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2020년 3월은 최근 몇 년 중 제일 행복한 때 아닐까 생각했던 시기였다. 코코는 다시금 밥 잘 먹고, 살 찌고 있었다. 영구적인 질병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무탈하게 잘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는 희망을 느꼈다. 봄날 산책 또한 이틀에 한 번 수액을 맞으러 갈 때마다 양껏 하고 있다. 1월 말에 간절히 빌었던 소원. 꽃 피는 계절은 한 번 더 같이 보게 해달라는 소원만은 넘침 없이 이루어진 셈이다. 병원비에 가난해진 기분이 들었지만, 당장 먹고 싶은 것 못 먹을 정도의 곤궁함은 아니니 한동안 모르는 척 지내기로 했다. 주말, 동네를 가득 채운 하얀 빛 속에 인파가 구름떼였다. 코로나 시국에 이게 웬 말이냐는 비판은 접어두고 싶었다. 다들 같은 마음으로 외출을 나왔으리라 싶어 외려 반가움이 앞섰다. 4월, 5월 빛이 쏟아질 여행지들을 상상해보면 기분이 설레고, 머릿속 저장되어 있는 고대(?)의 기억 속에 그런 광경과 온도가 여전히 새겨져있음이 다행이라고 느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아이패드로 그리면 되고, 책을 읽고 싶으면 읽으면 되고 글도 쓸 수 있다. 하고자 하면 아직 할 수 있는 것들만이 내게 중요한 것들로 남아있다는 걸 발견했다.


인생이 망할까 봐 오랫동안 근거 없이 두려워했다. 내 스스로의 삶 하나도 내겐 유달리 막중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그런 내게 코로나 시기는 이상하게도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줬다. 세상의 전복이 아이러니하게도 나 개인에겐 브레이크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내가 내 손으로 망치지 않아도, 삶은 어딘가에서 속절없이 뒤집힐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무력감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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