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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레 soore Oct 24. 2020

드레스를 입고 집을 나섰다.


나이를 아직 개월로  무렵, 디즈니 공주님이 입을법한 하얀 드레스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아기  통과의례처럼 그런  다들 하는 모양이었다. 미니 면사포가 달린 머리띠를 하고 “카메라 아저씨 보면서 웃어보자~” 하면 배시시 웃어 엄마 아빠의 박수갈채를 받는 .

정작 당사자는 기억이 없지만, 나풀거리는 드레스를 입은  사진에다 시침 분침을 꽂아 만들어놓은 벽시계를 엄마는 아직도 간직하고 었다.      


그로부터  20 만에 처음으로 드레스 입을 일이 생겨버렸다. 아주 형식적인 저녁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먹으며 처음  사람들과 와인잔을 부딪히는 저녁, *개스크였다. 포크가  개인지, 건배는 어떻게 하는지, 전채요리와 메인 디시 사이엔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까지 전통으로 정해진 파티. 우연인지 운명인지 개스크가 다가올 무렵 같은 *코리도에서 기숙사 방을 나간 미아 Mia 선물이라고 주고   무더기의 드레스들이 옷장  구석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닥이 울퉁불퉁한 부츠를 신고, 구두를 넣은 가방을 챙겨 길을 나섰다. 내딛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내 인생 제일 파격적인 이 옷을 입고 나가기까지 장장 3일간 저녁을 굶었다. 엉덩이부터 등줄기를 따라 올라가는 지퍼가 허리께에서 막혀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왕 목이 훤히 보이는 옷을 입는 거 쇄골도 좀 보였으면 했다. 희미한 쇄골이 보이고 팔뚝살이 도드라지지 않는 포즈를 3일 밤낮으로 연습했다.


 백번도 넘게 드레스를 입고 벗고, 구두를 신어보고 단화를 신어봤다. 머리를 묶어보고 풀어도 봤다. 같은 코리도에 사는 스코틀랜드 친구 에비 Abby에게 드레스를 뭉텅이로 들고  빨간 드레스를 입을까 까만 드레스를 입을까  저녁 내내 그녀를 귀찮게 했다. 하루 저녁을 이토록 기대하며 준비한 적이 있었나. 내 평생 이렇게 최선을 다해 예쁘게 꾸미고 나간 적이 있었나! 영하 15도의 눈길에 파티장에 가야 하는 바람에 드레스와 어울리지 않는 외투를 입고 미끄러지지 않는 부츠를 신어야 한다고 괜히 투덜댔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있었다.  이름으로 예약된 자리, 서너 개의 와인잔과 크기별로 놓인 포크와 수저, 영화에서만 보던 파티!


무슨 잔에 뭘 넣어 먹어야 하는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국제학생 개스크 international gasque 답게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의 국적이 다양했다. 하지만 모두가 근사하게 빼입고  데는 차이가 없었다. 남자는 슈트를 입고 검은색 넥타이 혹은 보타이를 맸다. 여자는 색색의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었다. 그렇게 멋지게 차려입은 남녀가  테이블에 주르륵 앉았다.


나는 미국에서 왔어,

나는 오스트리아에서 왔어,

나는 한국에서 왔어.


미국에서  남자애는 ‘그 유명한 스웨덴 개스크 참석하기 위해 슈트  벌을 집에서부터 가져왔다고 했다.  옆에 앉은 여자애는 드레스에 어울리 구두를 찾느라 중고 빈티지샵을  뒤졌다고 했다. 나는 같은 코리도 옆방에 있던 친구가 이사를 나가며 물려준 드레스를 입었다고 했다. 근사한 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비하인드 스토리에 초반의 어색함도 잠시 다들 너털웃음을 지었다.  

 


개스크 티켓을 사던  개스크 준비 위원회는 미리 참석자들의 식성을 조사했다. 채식주의자인지 그렇지 않은지, 와인을 선호하는지 무알콜 사이다를 선호하는지. 그렇게 각자의 선호 맞게 준비된 전채요리와 메인 디시, 디저트까지  개의 메뉴가  시간에 걸쳐 나왔다. 올라가지 않는 지퍼를 올리려고 하루 종일 고 온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적은 양의 음식들. 파티 내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렇지만 불평불만 대신 호호호 웃으며 말했다.


“여기 정말 음식이 정성 들여 준비되는 모양이야”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 가사를 알 수 없는 노래를 불렀다.

     

식사 중간중간   없는 스웨덴어의 노래를 눈치껏 따라 부르고, 주위 친구들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었다. 오늘만큼은 이런 식사자리가 익숙한 것처럼 놀아보려고 했는데, 사진  어색한 표정을 보니 그렇게 보이기는 그른  같았다. 그럼에도 오늘이 좋았다. 헐렁한 바지에 티셔츠 정도가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릎에서 찰랑이는 드레스를 입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익은 김치를  찢어 뜨신 밥에 올려먹고만 싶다고 생각했는데, 내내 사람을 배고프게 만드는 코스 요리도 나쁘지 않았다. 내가 나에 대해 모르는  많다. 아무래도 아직 알아갈  많은 사이인듯하다.     


오늘도 이렇게 하나 알아간다.


빨간 드레스와 지루한 코스요리를 좋아하는 사람.

아주 가끔은.



*[개스크 Gasque]
근사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여 격식을 갖춰 저녁식사를 하는 스웨덴 전통행사. 노래와 웃음과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코리도 Corridor]
 방과 화장실은 따로, 주방을 함께 쓰는 기숙사 flogsta에서 하나의 주방을 공유하는 열두 개의 방을 묶어 코리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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